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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찌 Dec 09. 2024

DAY 1, 비와 함께 시작된 여정

불운과 행운은 한 쌍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기대감과 이젠 익숙해져버린 비행기에 큰 동요 없는 마음을 깊숙히 넣어두고 도착한 오사카. 재작년 겨울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오사카였기에 숙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심에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내딛는 걸음마다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동생과 함께였던 첫 오사카는 일본에 대한 설레임이 그 어떤 것보다도 컸을 시기였다. 그도 그럴게 중학생부터 꾸준히 나의 여가 시간을 채워줬던 애니메이션으로 비슷한 듯 다른 일본 문화의 궁금증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또한 코로나가 끝난 후 첫 여행이라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운 만큼 새로움과 즐거움에 모든 여행의 기억이 세심히 저장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사카는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움'이라는 감정으로 나를 물들이는 곳이었다.


저녁 느즈막히 도착한 오사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래서 괜히 기억을 하나씩 더듬거리며 떠올리며 미소짓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난바역.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한 달간의 숙소는 닛폰바시에 위치해있었다. 난바역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처음 듣는 동네 이름에 살짝 긴장이 됐다. 괜시리 여러 걱정이 하나씩 차곡히 쌓여갈 때 쯤 그 걱정을 더 쌓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난바역을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때문이었다. 비라고 하기엔 좀 더 굵은 빗방울이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난 우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 우산을 들 손이 남아있지 않았다. 뭘 그리 가득히 채워왔는지 캐리어 두 개와 초행길을 비춰줄 휴대폰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여행의 마음가짐을 온전히 가지지 못한 채 도착한 곳이라 우산을 어떻게든 들고 싶어 애를 썼다. 괜히 우산을 쓰려다 가는 길은 더 늦어지고, 비는 비대로 맞으니 이게 진짜 욕심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비는 맞으면 그만이고 곧 도착하니 젖은 몸은 샤워로, 젖은 옷은 빨래로 단장해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생각보다 천천히 떨어졌지만 빗방울 하나의 크기는 물풍선이라 그런지 난 아주 빠르게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그렇게 한적한 건물 사이로 접어들었고 오후 8시, 비오는 그 거리를 걷는 사람은 앞서 걷던 우산 쓴 남자분 한 분과 나 뿐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 조용하기도 어둑하기도 해서 원래라면 경계심이 불쑥 밀고 들어왔을 타이밍이었겠지만 이미 비를 맞고 가며 생긴 이유 모를 자유로움에 두려움과 걱정은 이미 비에 씻겨 내려간지 오래였다. 그렇게 여행의 첫 날 마주하게 된 불운이 함께 가져다 준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더 크게 느끼며 숙소로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앞서 가던 남자분 한 분이 비에 잔뜩 젖어 어찌저찌 캐리어 두 개와 함께 걸어오는지 끌려오는지 모를 나를 이따금 뒤돌아보셨는데 별안간 다가오시더니 "우산 씌워드릴까요" 라고 조심스레 물어주셨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자 우산을 조용히 씌워주시더니 천천히 내 발걸음에 맞춰 걸어주셨다. 여행을 시작했다는 설레임 때문이었던건지, 20대 직장인의 불안한 마음이 비에 씻겨 내려가서 였는지 이미 가벼워진 마음에 얹혀진 따뜻함이 '내 여행은 생각보다 더 큰 행복으로 나에게 남겠구나' 라는 확신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남자분의 집과 나의 숙소는 10걸음 정도의 거리였고 난 무사히 숙소 건물로 도착했다. 숙소는 일반 맨션 형태의 집으로 실제 거주 하는 분들도 많은 곳이라 나의 여행의 목표였던 [그들의 삶에 함께 녹아들기]에 한발짝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작은 불운이 삶에서 늘 갈구하던 자유로움을 선물할 것이라고,  또 누군가의 친절을 경험할 기회를 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역설스럽게도 불운이 행운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앞에 거대한 어둠으로 드리워질 불운이라도 뒤에 숨겨질 행운을 발견하는 여정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주위에는 늘 반짝이는 네잎클로버는 어쩌면 늘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나의 주변을 가득 채울 때, 더 강한 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올 것이다. 내 여정의 발 아래 늘 반짝이는 네잎클로버의 존재를 알게된 그 날 이후 여행 속 내딛는 모든 걸음에는 기대만이 담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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