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불러준 이 앞에 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우리에게 무엇이 지금 가장 필요한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가장 마음이 아픈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쓸쓸한 틈새로 스며드는 자기연민과 변명이 어떻게 서서히 우리를 무너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니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이, 나의 관계적 역할들이, 나의 호불호가, 나의 감정과 생각이.... 온전한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나"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일정기간 동안 내가 사회에서 교육받은 것들이었고 , 나이 듦에 따라 가지를 치고 생긴 관계들이었고, 소유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들이었으며, 감정이나 생각 또한 늘 상황 따라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나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일 수는 있지만, 나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갈 때마다 나는 내가 없어지는 것처럼, 불안하고 우울했다.
나는 기도가 뭔가를 해달라는 요구가 아닌, 온전히 나를 내어놓는 자리라는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기도를 한다고 자리에 앉아 침묵의 시간과 공간에 나를 가만히 머물러 두게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사실 그것은 절대자를 만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내가 두려웠던 건, 그분을 만남으로써 드러나게 될 내 마음속의 깊은 상처와 어두움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았다.
그건 진짜 나를 만나는 두려움이었다.
눈을 뜨거나 감거나 간에 오로지 내가 당한 부당함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에 마음을 다 쏟아부었던 나의 에너지를 , 침묵 속에 두자니 온갖 생각과 말들이 머릿속에서 부유물처럼 뒤범벅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둥둥 떠다니는 내 생각과 감정의 조각들이 가라앉을 만큼 기다리면, 고요한 가운데 꼭 한 말씀이 드러났다.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서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고 다 짜낸 치약처럼 널브러져 있으면, 조용한 가운데 나로서는 생각지 못할 말들이 나의 영혼을 일깨웠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결혼 생활을 이어 온건, 스스로 평가하기를, 나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8할이라 생각했었다.
아이들을 향한 책임감과 모성애가 이 결혼을 이어왔노라고 스스로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곁들인 친정식구들에 대한 맏이로서의 책임이 나머지 2할을 채운 거라 굳게 믿었다.
아마 그것은 일정 부분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들 아빠가 마지막으로 터트린 시댁 재산에 손을 댄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기 전까지 내가 꽤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 마음속 가장 바닥에 숨어있는 내 마음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 실제 일어난 현실 속의 사건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시간"때문이었다.
일주, 이주가 지나도 들려오는 소식은 더욱더 점입가경인데, 나에게 더 절실한 위협은 통장에 입금되는 돈이 하. 나. 도.. 없는 거였다.
그제야 어머니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 새록새록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입이 탔다.
설마의 희망을 중얼거리다가도 나는 절망감에 서러워 드러누워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아니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니 몇 배로 더 갚아주시더라는 친구도 있던데, 왜 걔는 그렇게 해주시고는 저에겐 이렇게 가혹하신 거예요? "
문득, 한동안 절친으로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의 마지막 말들이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어려운 일( 경제적, 관계적으로) 들을 한꺼번에 많이 겪었는데 ,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돌이키고 잘 믿으니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배로 갚아주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면서, 그 어려움들을 통해 자기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일들을 계획하신 것 같다며 은혜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애는 화사하고 뽀얗게 배시시 웃으며 마지막 귀국인사를 내게 했었다.
나는 그때 신앙이 없기도 했지만, 그 소릴 들으며 속으로 기막혀하며 비난했었다.
그가 겪은 어려운 사건들이,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 잘못의 일차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했었기 때문이고, 주변에 끼친 그 고생과 상처는 어쩌자고 자기 하나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런 일을 계획하신 것이라고 쉽게 내뱉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저 하나가 귀한 영혼이라면, 그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긴 매한가지인데, 그 하나를 돌이키고자 하나님이 주변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리고 상처를 주다니! 나는 그의 말이 몹시도 거슬렸다.
그 논리라면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속성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하는 냉정한 판단과 더불어, 뭐든 제 중심에 두고 구원과 회복을 이야기하는 그 친구의 신앙관이 못마땅하고 씁쓸했었다.
하지만 그런 자기중심적인 친구의 간증에 몸서리치면서도 잃어버린 재화와 관계가 두배로 회복되었다는 그의 말은 망해가는 내겐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불쑥불쑥 나에게 떠오르는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내가 망할 때마다, 더욱더 가난해지고 구석에 몰릴 때마다, 그리고 기도한다고 눈을 감을 때마다.
그리고 어느 주일 아침, 아이들을 함께 지내던 후배 편에 교회에 보내고 나는 집에 누워있었다.
도저히 힘이 안 나고 서운한 마음에 일어서지 못하고 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향해 이야기했다.
“@@에겐 두배로 갚아주셨다면서 왜 저에겐 두배는 둘째치고 당연히 와야할 시댁 재산까지도 다 가져가게 하시는거에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도대체?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
그리곤 멍해졌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내가 손가락질했던 그 친구의 유치한 신앙관을 의식하며 나는 하나님이라는 분 앞에서도 꽤 예의를 갖추고 나름의 염치를 차리려 애를 썼는데... 왜 나만 모른 척하시는 걸까 하는 서운함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덜 사랑하나 보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게,
하는 낮고 조용한 음성이 스쳤다.
나는 벌떡 일어나 고쳐 앉았다.
나를 안다는 말씀 이외에 들은 두 번째 음성은 그거였다.
너무나 정확하게, 그게 네 거냐?라는 물음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이었다.
나는, 언젠간 내게 포상처럼 주어질 시댁의 유산이, 당연한 내 몫이라 생각했다.
인내로 이 굴욕스러운 시간들을 견디고 아이들을 잘 키워내면 당연히 돌아올 나의 몫.
언젠가 그날이 오면 기운 빠질 남편에겐 한 푼의 권리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나의 몫.
그 승리의 날까지 굳세게 견디면 꼭 돌아올 복리이자의 보험처럼.
맞았다.
나는 돈계산 밝고 욕심 많은 시어머니가 그래서 그 누구보다 미더웠다.
돈을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이재에 밝음이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돈마저 남편에게 내주고 시어머니가 당신 이름으로 된 계좌조차 없는 신세로 전락하실 줄은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다.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울었다.
모성애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나는 애들을 두고 죽으려고도 했었지.. 신세한탄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싶어 진심으로 미웠던 적도 많았었지... 남편을 죽이는 상상은 또 얼마나 많이 했었던가...
이 지난한 결혼을 견디게 하는 실질적 힘은, 긍정의 생각도, 믿음도, 모성애도, 책임감도 아닌.... 내 인생의 역전극이자 가장 큰 포상이 될 시댁의 유산이었으므로... 내가 포기하지 못하고 이어온 그의 아내역할이었음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리는 참으로 잔인하다.
어두움 한가운데 내리 꽂힌 가느다란 빛 한줄기의 힘은,
숨겨진 내 의도와 나조차 모르던 심지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었다.
기도가, 그런 것인 줄... 나는 몰랐다.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기도인 줄 나는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