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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Aug 22. 2016

내 탓이라고요?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옹색한 변명일지라도...

요즘들어 이곳도 공기중의 습기때문에 끈끈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크고작게 발생하는 산불때문인지 화창한 날씨의 대명사인 이 천사의 도시가 무겁고 답답한 공기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 또한 개운치 못하고 끈끈한것 같네요.

끈끈한 날씨로 말하자면 연일 기록갱신중인 서울의 기후와 비교할수 없는 같잖은 정도의 습기일지라도, 건조함으로 인해 더위를 더위로 느끼지못하고 여름을 즐거운 계절로만 인식해왔던 캘리포니안으로서는 이 끈끈함이 꽤나 맘에 들지 않습니다.


난데없는 끈끈한 날씨 때문일까요?

몸에 휘감기는 끈끈함이 마음에도 들러붙어서 왠지 기분또한 그런 느낌입니다.


감성이 예민하기 그지없던 어린시절에 비하여 이제는 심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꽤 건강해졌지만 , 저는 타고난 우울의 기질때문인지 오랜 감정의 습관때문인지 이따금씩 날씨탓을 하며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처럼 서둘러서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 애쓴다거나 혹은 침잠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무조건 외면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차라리 왜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 나의 생각과 행동과 그날의 사건들을 되짚어 보거나 이도저도 영 진전이 없을때에는 그냥 눈을 감고 세상과 분리되어 봅니다.

그렇게 분리가 되어 나의 생각과 마음과 몸을 유영하다보면 여러가지 과거의 기억들과 오늘의 사건들이 만나게 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때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참으로 낯선 , 잊고있던 나의 과거와 대면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보따리에 꾹꾹 눌러담아 때로는 풀었다가 때로는 진저리치며 내동댕이치는  기억들.

그 뭉치들이 , 끈 떨어진 연처럼 내 기억속에 떠돌다가 오늘 스쳐가며 들었던 어떤 노래 하나때문에 다시 우르르 몰려와서 나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겁니다.  이제 나는 삽시간에 한소절 음악을 열쇠삼아 그 음악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있던 그 시절 그 사건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작은 뇌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과 기억들과 사건들이 들어있을까요!  그것들의 마스터 키는 때로 음악으로, 때로 어떤 냄새로, 때로 어떤 촉감으로  옵니다. 그 사소한 것들이 리콜해오는 의식 저 너머의 기억들은 때로 나를 옭아매기도하고 위로해주기도 하지요.


이런 일들이 반복될때마다 해결되고 재정의 되는 기억들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암호를 잃어버린 금고 앞에 선 사람처럼 마주할때마다 당황스럽고 곤혹스럽기 그지없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나를 끈끈한 짜증으로 곤두서게 했던 그 음악으로 시작된 기억속의 나는 참으로 참담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서둘러 그 모습을 접어 저 안쪽 보따리로 쑤셔넣습니다. 더 펼쳐 볼 자신이 없어서겠지요.  그 상황을,  그 상황에 있던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던 나의 모습을 나는 아직 대면할 자신이 서지 않은게지요..


진정으로, 나는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만나게 되는 과거의 내 모습을 나는 내가 설명할수 없습니다. 그것도 나였고, 지금도 그 내가 이어져 온 나인데 나는 도무지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아, 내가 정말 할수 있다면 나를 만드신 분에게 찾아가 사용설명서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시대에 맞는 업그레이드도 요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 가질수 없어서 굳이 골라야 한다면..

나는 외형으로는 딸리더라도, 속이 든든하여 흔들림없이 담담한, 얄팍한 유행에 생각과 몸을 맡기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수 있는 겸손함을 달라고 간청하고 싶습니다.  자아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부인할수 있는 겸손함 말입니다.  


계속 습도탓을 하고 날씨탓을 하는듯 하지만 실은 나는 나의 탓을 하고 있습니다. 못나고 부족하고 아쉬운 나 자신을 탓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함에 뿌리를 내린것이 아니라 교만에 뿌리를 둔 마음이라는것을 나는 압니다.

진정으로 내가 나를 알지 못하므로 , 만드신 이에게  탓을 돌립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겸손과 인내를  함량미달로 넣어주셨는가 보다고..


그렇게 나는 또 남 탓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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