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겨울을 기다리다.
스토크라는 꽃 아시나요?
우리말로는 비단향꽃무라고 한다는 꽃인데요.
제가 즐겨보는 정원 관련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어 가을의 초입부터 씨앗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왜 키우기 시작했냐면, 향기가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겨울철 아파트 베란다 정도의 서늘한 온도에서 잘 크고, 꽃을 겨울 내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향기 좋은 꽃을 겨울 내내 볼 수 있다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요?
어쨌든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크고 있는데,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분갈이를 차일 피일 미루고 있으니 엄마가 집에 있는 재활용하려고 모아둔 컵들을 씻어 나름의 분갈이를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그 재활용 화분들도 작아져 버렸습니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현관가에 있는 스토크들을 볼 때마다 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이젠 정말 미룰 수가 없겠다 싶어서, 지난 주말 팔을 걷어붙이고 분갈이를 시작했습니다.
집에 가지고 있던 원예용 상토도 꺼내오고,
오늘을 위해 구입한 토분과 마사토도 가지고 나왔습니다.
말라버린 잎들이 나뭇가지와 작별을 나누고 있는 이 늦가을에 초록초록한 새싹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오랜만에 정원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원예용 가위를 가지고 나오고, 작은 삽을 움직이는 일련의 일들을 하는 게 새삼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잠깐이나마 반복되는 일상의 스위치를 끄고, 감성의 스위치를 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작은 모종을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옮겨 심는 일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 비슷한 일이예요.
흙의 보드라운 감촉과 여리여리한 풀의 움직임이 장갑을 통해서 느껴지는 게, 꼭 일상에 지쳐버린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거든요.
얼마간 그렇게 집중을 하다보니 분갈이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작고 여린 풀들이 다칠까봐 물도 조심히 흠뻑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원에는 여러 번 꽃을 심어 보았는데, 겨울을 위해 화분에 무언가를 심는 일은 처음이네요.
그리고 화분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가장 비슷한 거실 창 근처에 쪼르르 올려 두었어요.
과연 잘 자라서 꽃이 얼굴을 보여 줄까요?
그 향기를 저에게 허락해 줄까요?
다시 두근두근한 초보 가드너의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잘 커서 활짝 핀 스토크 꽃을 보게 된다면,
그 향기에 겨우내 취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겨울에 스토크를 꼭 키우게 될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의 겨울옷을 꺼내서 정리하는 일,
마당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일,
아이들과 겨우내 놀 눈썰매를 꺼내는 일과 더불어
또 한 가지의 겨울맞이 to do list가 추가 되겠죠.
이 쓸쓸하고, 길고, 추운 겨울을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정원의 마지막 차례, 국화도 굿바이 인사를 건네는 이 시기에 겨우내 만날 새로운 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도 덜해지고,
눈이 반갑지 않은 나이에
겨울을 기대할만한 일이 생겨서
참 다행이예요.
여러분은 어떤 겨울을 준비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