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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Dec 17. 2021

컵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인생을 반만 보지 말자.

자가면역질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그냥 나로서도.


얼마전에 유리 컵을 샀어요.

사실 컵이 집에 많아서 이제 당분간 유리컵은 사지 않기로 했는데 말이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을 하려고 보니까, 영화 50/50 굿즈로 나온 컵이라 지금은 팔지 않는 거예요. 낙담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에 영화 개봉 10주년을 맞아 판매가 재개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구입했어요.

왜냐하면, 디자인도 그렇지만 컵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와닿고 좋아서요.

컵을 파는 사이트(strol)에 적힌 설명을 살펴 볼까요.

영화 50/50 인생의  부분과  부분이  녹아 있는 영화예요. 어떤 행운아의 인생도 평생 장미빛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병도 걸리고 이별도 하게 되지요. 어떤 불운한 이의 인생도 죽을 때까지 잿빛은 아닙니다. 괴로움의 연속인  같지만  보면  안에 작은 즐거움들이 숨어 있습니다. …(중략)… 사는 동안은  모르지만, 인생    마시고 나면 우리 인생이 반씩이었던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컵은 커피를 부으면 우윳빛 50 보이고, 우유를 부으면 잿빛 50 보이는 우리 인생 같은 컵입니다.
우리네 인생 같은 컵이라니



둘째의 전두탈모로 무작정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왔다고 저의 첫번째 글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돌 즈음 배냇머리가 빠지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원형탈모에서 다발성으로, 전두탈모가 되기까지  3개월이 걸리지 았어요.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 커다란 불행의 폭격을 받은 것 같았죠. 나중에 알았지만 자가면역질환이라 난치성이고, 재발률도 잦다고 했습니다. 그땐 그냥 절망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나서 6개월쯤 지났을 무렵, 신기하게도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기적처럼 병원 치료없이 머리카락이 전체 발모했. 이제는 단발머리고요.  감사하고 다행인 일입니다.


그런데 듣던대로 재발이 무섭다더니, 지난여름 또 다시 머리가 끊기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한 지 일년여만의 일이었어요.

저는 다시 절망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2년전쯤에 어떤 식으로  병이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끊기다가 원형 탈모가 되고 다발성 탈모가 오고, 전체 탈모까지 오면 어쩌나하고  멋대로 미리 미래를 짐작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남편 올지 모르는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얼마간은 다시 지하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원형 탈모반은 500원짜리 두개만큼 커졌어요. 그런데 낙담을 하다가 문득 그런생각이 더라고요. 앞으로 일어날지  일어날지 모르는 일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남편도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었지만, 근처에 내려와 계시는 친정엄마는 정말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어 주셨죠.

네가 그러면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겠냐. 엄마가 강해져야 한다.”

표정과 말투, 목소리와 같은 작은 부분까지도 아이는 엄마의 우울과 불안을 감지하니까요.  시기의 아이는 아마도 저의 흔들림을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그건 정말 저에게도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다시,
정신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조금 지나니  부분에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겨울이 찾아온 지금은 거의  채워졌습니다. 물론,  위로 조금씩 끊기는 머리가 있긴 하지만요. 예전에 만나 본 저명한 대학교수도 그렇게 말했지만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바쁘고, 정신 없을 , 마음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때는 아이의 머리를  들춰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아지고 있어, 좋아지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그냥 안 좋은 감이  오는 , 갑자기 두려운 기분에 휩싸이는 날엔 갑자기 아이의 끊기는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을 일부러 들춰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예견된 결과에 스스로 절망하죠. 딱지를 떼면 피가 흘러내린다는 걸 알면서, 쓸데없이 스스로 상처를 후벼파버립니다. 이게 나빠지고 있는 건지, 좋아지도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요. 그냥  순간을 막연하게 절망으로 바라보고 나락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물론 내 일이 아니고,  아이의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일이면 어떻게든 견뎌 보겠는데 말이예요. 아이의 일이면 아이는 정작 괜찮을지라도 엄마인 제가  배는  괴로워지는  같아요.



그런데  컵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드는 겁니다.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지금이 행복한 ‘50’ 쪽일 때라도 겸손하게 있어야 합니다.  행운과 행복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리고 지금이 절망적이고 불행한 ‘50’이라도 견뎌야 합니다.  끝나지 않을  같은 혹독한 시련도 언젠가는 덤덤하게 받아들일 날이 오게 되거든요.


2020 3월에  곳으로 이사를   저는  겨울이었는데,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서 가을은  많이 행복했어요.  가을엔 지난 겨울을 생각하며 마음을 쓸어내리고, 웃어 넘길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번 여름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춥고 눈이 흩날리는 겨울엔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희망찬 미래를 꿈꿔 봅니다.



그래요. 그게 인생입니다.

인생의 끝 날, 멀리서 보면 지금 이 순간이 그저 하나의 작은 점이겠죠.

웃기도 하고 울기도   날에 대해 조금의 기억도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일희일비한, 당장은 엄청 중요해보이는  순간이 말이예요.

우리는 그냥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시련이 닥치면 방법을 찾아나가야  겁니다.


컵을 보고 정신을 차려봐요.

책이나 영화, 사람에게서는 받은 적은 있는데, 컵이 주는 메시지는 처음 받아봅니다. 그렇게 생각도 못한 컵이 주는 메시지로,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렵니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유명한 대사 하나 패러디 해볼까요.


나는   찾을 겁니다.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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