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처음으로, 딸기밭에서 딸기를 샀습니다.

계절이 교차되고 있는 이 순간.

by 릴리포레relifore

이상 고온으로 연일 따뜻한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겨울은 겨울입니다.

뭔가 아직은 덜 추워서 이상하다 느껴지는 겨울 초입, 드디어 딸기밭에 딸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딸세권에 살고 있어서, 딸기밭에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렸거든요. 오늘이 바로 그 날이네요.


여기 이사와서 딸기가 11월 말 쯤 등장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마트에 언제부턴가 딸기가 있긴 했지만 사실 등장 날짜는 잘 몰랐어요. 언젠가부터는 매장에 진열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어렴풋이 우리 어린 시절 배웠던 것처럼 딸기는 봄 과일이지, 라는 생각만 가졌을 뿐이었죠.


그런데 딸기밭 근처에 살다보니 봄에 한창 사람이 붐비던 딸기밭 문이 닫히고, 한동안 텅빈 주차장과 불 꺼진 딸기밭을 보게 되거든요.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가을이 지나고, 바람이 차가워진다 싶은 날씨가 될 무렵 갑자기 딸기밭에 불이 켜져 있는 이질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와요. 하루, 이틀 퇴근길엔 '뭔가 이상하다?' 싶은 기분을 느끼다가 번뜩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딸기가 나왔나?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퇴근길에 또 불이 켜진 딸기밭을 보면서 운전을 하다가, 주차를 하고 얼른 아이들 손을 잡고 딸기밭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딸기가 팔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벌써 손님들이 많이 다녀가신 모양입니다. 제가 마지막 한 바구니를 사게 되었거든요.

첫 딸기, 라스트원의 기쁨.


오늘 문해력 개별화 수업을 하면서 학생과 함께 안녕달의 '수박 수영장' 그림책을 읽었어요. 하나, 둘 수박 수영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단풍잎과 은행잎이 떨어지는 시기가 되면 수박 수영장이 문을 닫죠.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인사를 남기고 말이예요. 저도 수박 수영장이 한창이던 여름, 빨간 단풍잎과 노오란 은행잎이 한창이던 가을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며 뭔가 쓸쓸한 여운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새 계절에 만나는 즐거움인 '딸기'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들과 여러 계절들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달큰하고 향긋한 딸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의 딸기 글에서도 썼던 것 같아요. 딸기밭에서 바로 딴 딸기는 달콤새콤한 맛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몇 퍼센트가 있다는 것을요.

일단 한입 베어물 때 향긋한 딸기꽃의 향기가 함께 납니다. 코로 먼저 딸기의 향과 남아있는 딸기꽃의 향기를 맡으며 입으로 달큰하고 새콤한 딸기의 과즙을 느낄 수 있지요. 싱싱하고 신선하면서 향긋하고 달큰하고 새콤한 그 맛. 요즘 외국에서 한국 딸기가 비싸게 팔리면서도 큰 인기라는 것을 기사에서 봤었던 것 같은데, 여러 수고로움없이도 집 근처에서 가장 최상의 딸기를 비교적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별 일 없어도 지치는 금요일, 퇴근길에 아이들 손을 잡고 딸기밭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지막 남은 행운의 딸기 한 바구니를 사들고 아이들과 다시 동네로 걸어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이미 딸기를 손바닥 가득 들고 하나씩 먹으면서 걸어 왔습니다.(딸기밭에 방문한 손님들은 몇개씩 덤으로 더 주시니까요.) 아직 춥지 않아서 코끝에 맴도는 공기는 싸늘하지 않고 기분좋은 서늘함을 가집니다. 그리고 아직 겨울이 아니라 나무 냄새, 발 끝에 채이는 낙엽 냄새가 주변에 가득합니다. 오손도손 서로의 손을 잡고 떠나가고 있는 마지막 즈음의 가을 풍경으로 걸어 들어오며,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딸기를 맛 봅니다.


얼마전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에 차를 세워둔 적이 있는데, 그 때 떨어진 단풍잎 하나가 한동안 사이드미러 근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어요.

며칠 출근길에 차창을 통해 바라보면서, 가을이 떠나가길 아쉬워 하는구나, 싶었는데 사실 그건 가을을 보내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딸기를 만났습니다. 이제 그 단풍잎은 그만 보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절이 교차되는 이 시점에서, 보내줄 것은 보내주고 아쉬운 것들은 털어 버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텅 빈 마음으로 겨울의 새로운 즐거움을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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