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겨울에 쌓인 추억들이 생각나는 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펑펑 눈이 내렸습니다.
어제 저녁, 집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창 밖을 바라보며 눈이 쌓였다고 환호성을 지르더라고요.
이렇게 눈이 쌓이면 낮이든 밤이든 우리 가족은 밖으로 총출동을 합니다. 아이들은 눈놀이가 하고 싶고, 어른들은 마을 도로 초입에 눈이 잘 녹지 않는 곳을 쓸러 가야하거든요.
아이들은 귀마개와 장갑을 준비하고 우리는 패딩을 두껍게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어요.
아이들의 놀이터는 바로 코 앞에 펼쳐져있는 마당입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눈이 와서 밖으로 나가보면 이미 다른 아이들이 먼저 눈놀이를 시작해서 원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눈이 소복이 잘 쌓인 곳, 아직 발자국이 없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온 겨울, 마당에 쌓여있는 그 흰 눈들이 모두 우리만의 것이라는 사실에 너무 들뜨고 신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이 눈은 다 너희들 꺼야."라고 말해주니, 별 것도 아닌 것에 소리를 지르고 좋아하더라고요.
발자국을 찍는 것도, 눈밭에 누워서 팔과 다리로 눈을 쓸어 보는 일도, 눈사람 만들기도, 눈오리를 찍어보는 것도 충분한 '우리만의' 눈과 함께 가능해졌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우리만의 마당에서요. 야외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행동 등에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우리만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지난 겨울의 추억에 젖어있는 사이, 아이들은 이미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저는 장갑을 끼고 넉가래를 챙겨 남편과 동네 도로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고맙게도 우리 동네 도로는 눈이 금방 잘 녹아버리는데, 딱 한 부분이 안 녹는 곳이 있거든요. 이번에도 나가보니 다른 도로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는데 한 곳에만 눈이 쌓여 있었어요.
남편이랑 넉가래로 눈을 양쪽 끝으로 밀기 시작했습니다. 별 것 아닌 동작인데도 팔과 다리에 꽤 힘이 들어갑니다. 한참 눈을 밀고 있는데 맨 윗 집으로 올라가는 동네분의 차가 근처에 멈춰 서서 수고한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어요. 사실 눈이 올 때면 매번 동네 아저씨들이 새벽부터 나오셔서 길을 쓰시기 때문에 안전운전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봉사를 하자,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렇게 고마워 해주셔서 오히려 황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간 눈을 밀고 있으니 손 발이 따뜻해지고, 땀이 나는 것 같습니다. 밤 운동 한 번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남편하고 집으로 올라가서 정리를 하고는 당보충을 하기로 했어요.
그것은 바로 곶감!
지난 늦가을에 말리기 시작해 이제는 적당히 잘 마른 곶감을 하나씩 먹기로 했습니다.
리틀포레스트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곶감이 맛있어졌다는 건 겨울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어느새, 그렇게 겨울이 깊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걸 바라보며 먹는 곶감의 맛이란! 이건 겉바속촉이 아니라, '겉쫀득속사르르달콤'이에요. 그간의 수고가 한 방에 녹아내립니다.
그 사이 아이들의 눈사람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전원주택 3년차, 그동안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 중에 제일 크고 제일 멋진 눈사람이 완성되었네요. 첫 해에는 엄마, 아빠가 함께 눈덩이를 굴려 주었는데, 이제는 둘이서 온전한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많이 자랐음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저녁입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와서 세 번의 겨울을 지내는 동안, 그만큼 우리의 겨울 추억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잊도 있다가도 추억이 담긴 노래를 듣거나 향을 맡으면 한번에 기억이 확 불러일으켜지는 것 처럼, 눈이 오니까 그간의 겨울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꺼내어 지네요.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 눈사람, 눈오리, 얼음 썰매와 눈 썰매. 추울 때 만들어 먹던 호떡, 마당냥이들의 겨울집을 만들어 주던 일까지도요.
그리고 어제, 올 겨울 처음으로 펑펑 눈이 내린 날. 아이들이 온전히 만든 가장 큰 눈사람과 설경을 바라보며 가을부터 기다려온 곶감을 맛보던 그 저녁.
그렇게 우리만의 올 겨울 추억이 또 하나 쌓였습니다.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나중에 꺼내면 빙그레 웃을 수 있도록 올 겨울도 부지런히,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 보아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