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신도 괜찮을 겁니다.

우울이 왔다갔다 하는 봄날의 처방전

by 릴리포레relifore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상의 루틴대로 집을 대충 정리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가, 문득 창 밖을 바라보니 한 송이만 폈던 수선화가 어느새 세 송이가 되었네요.

얼른 마당에 나가 확인을 하니, 뒤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봉우리도 보이고요. 구근 두개를 사다 심은 거라, 별 생각없이 올 봄에는 두 송이를 보겠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 봉우리마저 다 꽃이 피면 생각지도 않았던 수선화를 네 송이나 보게 되겠네요! 이건 정말 그야말로 득템한 기분, 예상치 못한 수확입니다.

그 사이 히야신스는 그들의 찬란함을 다 하고, 작별을 고하고 있네요. 그 찰나의 향기, 그 황홀함이란! 봄날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어 고마웠다는 인사를 뒤늦게 나마 전해봅니다.


실내에서 씨앗부터 키웠던 스토크를 따뜻했던 주말에 심었어요. 그런데 이제 드디어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보기를 희망했었지만 도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제야 허락을 해 주네요. 가까이 다가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그 향기에 취해 봅니다.


그 옆에는 최근에 사다가 심은 목수국이 있는데, 이곳에도 변화가 보입니다. 새순이 돋아 나기 시작했거든요.

정말 바야흐로 봄인가 봅니다.


마당 복숭아나무, 사과나무에 새순이 돋고, 벚나무가 꽃이 피우려는 준비를 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빛바랜 누런색이었던 겨울의 잔디가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산에서 들리는 새 지저귀는 소리가 다양하게 들리는 그 봄이 제대로 찾아 왔어요.





저는 봄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또 차례로 두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친정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일을 하다 달려오는 그런 숨가쁜 워킹맘의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네, 맞아요. 보냈다기 보다는 견뎌내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야 며칠만에 유치원과 학교에 각각 보내고나니 이제는 제 차례인듯, 온 몸이 신호를 보내 옵니다.


어쩜 삶이라는 것은 늘 한 걱정 끝나면 다른 걱정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걱정도 팔자, 라던데 그게 저를 두고 하는 말인 것처럼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날들이 많아요. 바깥에서 저를 보는 사람들은 마냥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오해들을 하겠지만, 타고나길 예민하고 완벽주의자인 저에게는 걱정과 불안이 늘 털지 못하는 피로처럼 등에 엎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기라는 큰 걱정을 떨쳐 버리고 나서도 남은 걱정을 끌어 안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요즘 부쩍 둘찌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같거든요. 제 글을 처음부터 보신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아주 어릴적부터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탈모를 가지고 있는 둘찌는 저에게 있어서 늘 보듬고 안아줘야 하는 대상입니다. 사실 걱정만 한다고 미래가 핑크빛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걱정한다고 올 미래가 안 오는 것도 아닌데, 엄마라서, 제 아픈 손가락인 그 아이를 늘 걱정하게 됩니다.

오지도 않을 상황을 크게 보고, 그 때 혹여나 다치게 될 아이의 마음을 걱정해요. 어쩌면 그 때의 저를 미리 걱정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그렇게 두 아이 감기를 잘 이겨내게 하고서도,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칭찬과 격려는 커녕 또 나빠지면 어떡하나 그런 새로운 걱정으로 저 스스로를 옳아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 몸과 마음이 아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잠깐 밖으로 나가 둘러본 정원에서, 새 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구름 속에서 해가 나와 따뜻한 햇볕을 조금 맞으니, 올해도 나무에 돋아나는 새순을 보자니, 두 송이가 필 줄 알았던 수선화가 네 송이가 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 작은 것들이 불현듯 모두 행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누리고 있다는 벅찬 기분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머리숱이 많은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머리에 몇 군데 머리칼이 비어있는 뻥 뚫려 보이는 구멍이 있더라도 괜찮아, 할 수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이렇게 우울에 빠져 있으면 안 되는 것이 확실하죠.

매일 밟고 올라가며 지나쳤던 계단 앞에 민들레가 저렇게 피어났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방이 봄입니다. 개나리, 꽃잔디, 제비꽃, 그리고 조금 있으면 우리집의 전매특허같은 마당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그 날도 찾아오겠죠.


누구나 누리는 당연한 것이 아닌데, 전 왜 그것들을 공기처럼 생각하지도 않고 지나치고 있었을까요? 오늘의 소중한 행복과 행운들을 놓치고, 오지 않을 수 있는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을까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그 시간에 더 빨리 밖으로 나와 마당이나 한 바퀴 둘러보며 햇살을 쬐고, 나무와 꽃의 변화를 살뜰히 챙기고, 우리집 옆 산 어딘가에서 지저귀는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하루를 망치기 전에 생각을 바꿨다는 거겠죠. 그리고 이제는 후회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속 유명한 대사처럼,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당신도 괜찮을 겁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슬프고 막막하고 아찔하고 당혹스럽고 절망적인 그 미래는 오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 작지만 소중한 순간으로 가득찬 오늘을 기쁘게 살아내봐요. 그리고 가끔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꽃 한 번 쳐다보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쉴 틈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들을 해내고,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토닥여 줍시다, 우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