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엄마의 잠자리 그림책 육아
어제의 7세 둘찌 pick 잠자리 그림책!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둘찌가 직접 고른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 소중한 시간들에 초기 문해력 석사 전공 중인 초등교사 엄마의 시각을 더해 그림책 육아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1. 창 너머_ 영국의 3대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인 찰스 키핑의 그림책입니다. 어린시절 병약했던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방안에서 커튼을 열어 창 밖을 구경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하죠. 책장을 넘기면 커튼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주인공이 활짝 열어 놓고 밖을 보기도 하고 조금만 열어 훔쳐 보기도 하죠. 이걸로 드러나지 않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추측해 볼 수 있어요.
사실 이 책의 표지부터 둘찌는 무섭다고 했어요. 색감이나 구도, 그림체가 유아들이 보기에는 낯설고 어쩌면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이 책을 보면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상도 드러나고, 주인공 아이의 상황도 잘 느껴져요. 둘찌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이 때의 주인공의 마음을 이야기 해 보고 했더니 나중에는 흠뻑 빠져들어 읽더라고요.
여러 논문을 통해 <창 너머>를 살펴보면, 심리학적인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마지막 창에 그린 그림이 여러 의미들을 담고 있긴 하지만(흘러내린 물이 피로도 읽힐 수 있죠.) 둘찌와는 그런 이야기 보다, 시대 상과 창에 그림을 그려본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2. 빈터의 서커스_ 이 책도 찰스 키핑의 책인데, 아이들이 놀던 빈터에 서커스단이 찾아오는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둘찌를 비롯한 요즘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서커스나 회전목마를 실은 트럭이 찾아오는 것부터 신기하고 생소한 이야기이죠.
주인공 두 아이가 서커스 단이 차린 장소에서 동물들도 보고, 놀이기구도 타고, 서커스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들뜨고 행복해지며, 그 때의 그림책 지면에서 색감이 달라집니다. 둘찌는 특히 서커스 장면의 그림들을 좋아하고 찬찬히 뜯어보더라고요.
마지막 장에서 스콧과 웨인 두 아이 중 한 명에게만 색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같은 장소에서 느끼는 것과 그 여운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둘찌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던 뜻깊고 좋은 밤이었어요.
(이 책은 현재 절판이라 저도 중고책을 구했는데, 좋은 그림책들이 절판되는 것이 아쉽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다양한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시도록 이런 책들도 계속 공유해볼게요.)
*부러웠던 영국의 독서 교육
요즘 석사 논문을 쓰고있는 시기라 기존에 공부하던 문해력, 초기 문해력 이외에도 독서교육 관련 논문과 책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 김은하 작가의 <영국의 독서 교육>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는데, ‘책’을 교육의 키워드로 뽑는 영국의 교육관이나 시스템이 참 많이 부럽게 느껴지더군요.
작가는 영국 아이들의 ‘책과의 만남’들을 참여관찰을 통해 풍부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익숙한 ‘독서 교육’ 대신 ‘독서 경험’이라는 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독서 교육’이라는 그릇으로는 잘 담을 수 없는 활동들이 많아서라고 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의 주인공이 그려진 찻잔에 코코아를 마시는 것, 도서관의 중고책 벼룩시장에서 바비큐를 굽는 것, ‘찰리와 롤라’ 시리즈를 텔레비전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퍼즐 놀이를 하는 것, 작가의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 도서관에서 종이접기와 숙제를 하고 오는 것, 테마파크 ‘토마스 랜드’에서 놀다 오는 것,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그리는 것, 요리책을 보고 요리해보는 것, 여행을 가려고 지도를 찾아보는 것은 독서 교육인가 아닌가?”
이 책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영국 아이들의 독서 경험들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제시해주며 독자의 몫을 남겨 줍니다. 부럽게만 느끼거나 영국의 교육제도나 인프라에서나 가능하다고 치부하지도 말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보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힌트를 얻어가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 가정과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책을 만날까요?
이 책에서는 책 읽기와 지적 성취 간의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학계의 연구 성과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며, 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책 읽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어린이의 책 읽기가 유례없는 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책을 만나는 경로는 단순하고 그 경험은 풍부하지 못하다고 현실을 꼬집고 있죠.
“일상적으로 아이들이 책과 관련되어 맺는 경험은 ‘개인적인’ ’읽기‘가 전부이고, 부모 또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아이는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전집 중심, 구입 중심, 학습 중심, 단계 중심이다. 이렇게 비자발적이고 빈약한 독서의 경험을 한 다수의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는 즉시 책을 어려워하거나 지겨워하거나 멀리하게 된다. 학교만 떠나면 책을 친구 삼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 2009년에 비해, 제가 학교나 주변에서 느끼는 아이들의 독서 경험은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 전시회 및 그림책 축제, 도서관의 다채로운 행사와 체험들이 많아졌죠. 그러나 2024년 현재도 대중적으로 ’독서=공부‘라는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 점과 학교 현장에서 ’독서 스티커제’, ‘독서 인증제‘등 외적 동기를 키우는데 급급한 독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발적인 독자‘를 키우는 일은 아직 멀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제도와 시스템들이 많이 달라졌더라도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개인들의 관점과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변화는 깊이있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 학교 현장으로 복귀를 해 담임교사로 아이들과 만날때는 일시적이고 단순한 흥미만 자극하는, 재미있는 독서 활동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알고 책을 진정하게 즐길 수 있는 독자를 키우는 활동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집에서도 둘찌에게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만 책을 즐기는 것이 아닌, 독서를 하는 것이 ’놀이‘이자 ’힐링‘의 한 종류로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며 ‘책육아’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공유하는 것도 계속 가져가려고 합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해보겠습니다.)
’자발적인 독자’를 키운다는 것은 지적 성취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 아이에게 평생 친구이자 의미있는 삶의 나침반 하나를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아이들의 손에 ‘휴대폰’이나 ‘패드’가 아닌 ‘책’을 들게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음을 느낍니다. 전보다 더 어려운 환경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 개개인의 미래, 그 개인들이 모인 미래의 공동체를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학교, 도서관, 집 등의 여러 곳에서 아이들에게 책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시고, 책의 재미에 빠지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