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업종에서 15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나는 삶을 통해 익히고 배워왔던 덕목들을 가슴에 새기고 지키려 노력한다.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그것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타인과 조화롭게, 무능함이나 나태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자’이다.
하루의 반 이상 머무는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나에게 꽤 높은 비중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그렇듯 타인들도 제각기 자신의 인생의 기준을 세우며 살아가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삐걱거리는 관계 속에서 나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겠지만.
현재 같은 사무실에 있는 이들을 그룹별로 서술해 보자면,
1.월급 루팡
우리 사무실의 월급 루팡 A는 근무시간에 웬만해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동산 관련 전화와 문의, 넷*** 감상, 인터넷 쇼핑 등 근무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개인의 것으로 취한다. 게다 업무와 관계없이 매일 초과근무를 신청하여 초과근무 수당을 톡톡히 챙겨받고, 어지간 해서는 집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 달분의 초과 시간(56시간)이 채워지면 꼭 해야 하는 공동작업이 있더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을 한다. 은둔형 외톨이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직장 내에서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지만,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타인의 상황과 관계없이 장시간 붙들고 이야기를 쏟아낸다.
2. 직장 내 pc방 죽순이
사무실 내에서 가장 어린 B는 자신의 자리를 비우기 일쑤이다. 어디 갔는고 하면 이내 손에 테이크 아웃 컵이 들려있다. 조직의 규칙에 따르면 개인 용무로 자리를 비울 경우 외출, 혹은 조퇴 등의 신청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B는 늘 자유롭다. 아니 제멋대로다. 자리를 비울 경우 주변 사람들은 B를 대신해서 전화를 받거나 일하기 바쁘고,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고 알려주면 ‘그냥 기다리라고 하세요.’라며 흘려 버린다. 또한 B는 자신의 책상에 2대의 모니터를 구비하여, 한 대는 업무용으로, 다른 한 대는 개인 취미생활인 아이돌 영상 유튜* 감상용으로 사용한다. 의자 옆에 여분의 의자를 가져다 두고 늘 다리를 올려두며 편안한 자세로 게임하며 생활한다.
3. 천사 코스프레 하는 악마
C는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친절하다. 처음 C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할 정도로 C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C는 본성을 드러냈다. 대화 속에서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며,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않는 대화에는 자취를 감춘다. 다른 이성에게 상냥한 말투로 성희롱인 듯 아닌 듯, 수위를 넘나드는 말을 건네지만, 상대방은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C의 상냥한 모습에 말문이 막힌다. 거기에서 화를 내는 자신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C는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조차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로 나긋나긋 이야기하지만, 뒤돌아서는 즉시 남이 듣건 말건 쌍욕을 남발한다. 그 사람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 싶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칭찬 세례를 한다. A, B와 마찬가지로 근무시간을 사유화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4. 방관자 그룹
이들은 A, B, C의 행태를 알고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신경도 쓰이지 않는 눈치다. 특히 사교성이 좋고 노는데 일가견 있는 B와 C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지만, 한편 B와 C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거나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5. 은따
이들은 A, B, C, 심지어 방관자 그룹 D에도 겉도는 관계이다. 이들도 제각각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인지 자신들끼리 위로하며 지내는 모습이다. 가끔 방관자 모임 D와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거두어 버리는 D를 개인주의라고 생각하며 결국 씁쓸해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화시켜 바라보고 싶다.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마음으로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안되니 속이 말이 아니다. 자꾸 쪼잔해서 가재미 눈을 하고 그들을 바라보고 규정짓는 내 모습도 맘에 들지 않는다. 제 마음 하나도 어쩌지 못하면서... 각자 자기 방식이 편하고 좋다는데, 굳이 내가 관여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자꾸 신경쓰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 결국 나도 꼰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