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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고메리 Aug 15. 2023

7. 나의 펜팔친구 이야기

시내 귀퉁이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편지.

  지난 1학기의 어느 날, 금요일에는 걸어서 출근을 하고 있기에 걸어가다가 지인분을 만나게 되어 함께 출근한 날이 있었습니다. 지인분의 자제분이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이여서 가끔 자녀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번 여름방학에 긴 기간의 국제 청소년 야영행사에 아이가 참여를 희망하여 고민이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더운 여름에 야영을 해야 하여 아이가 체력이 약한 편이라서 엄마, 아빠는 건강에 대한 염려로 염려를 하는데, 아이는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 교류하는 행사를 꼭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고민도 이해가 되고, 아이의 희망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세계 문화에 대한 호기심, 다른 나라의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같으면, 해외여행이 흔한 것이지만, 90년대 초반 나에게는 정말 상상만 할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단발머리 중학생시절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시내로 갔습니다. 당시에는 펜팔친구와 편지를 하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모퉁이 작은 가게의 모습을 방문했던 날을 떠올려보니 잊고 있었던 그날이 생각납니다. 가게 사장님은 파일 같은 것에 다양한 주소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 나라의 친구들의 주소가 있어서 어떤 나라의 친구를 만나고 싶냐고 물으셨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회 시간에 배운 오스트레일리아, 호주의 친구를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의 나라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관심 있는 나라의 친구와 교류를 하고 싶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온 이름과 호주의 친구 주소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영어를 배운지라 잘하지는 못했지만, 영어사전으로 찾아보면서 더듬더듬 편지를 쓰다 보니 또 재미가 있었습니다. 영한사전으로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한영사전도 구입을 하였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꽤 시일이 지나서 답장을 받았습니다. 외국 친구의 글씨체가 흘림체여서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보다 보니 또 적응이 되고 사전도 찾아보면서 서신이 오고 갔습니다. 인상 깊은 점은 향기책갈피를 편지에 끼워서 친구가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향기가 가득한 편지는 참 좋더라고요. 몇 년간 오고 간 서신 속에 사진도 주고받고, 집사진도 받고 참 좋은 경험과 추억입니다.


  대학을 가고 이제는 종이편지가 아닌 이메일이 더 편하다고 느껴서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기게 됩니다. 청소년기의 좋은 기억이었구나. 이렇게 여기던 2004년의 어느 날, 잘 확인하지 않던 이메일을 우연히 보다가 친구의 메일을 보게 되고 놀라게 됩니다. 친구가 다른 친구 1명과 함께 아시아 쪽 여행을 오면서 잠시 서울을 들르게 되었고, 나에게 시간이 된다면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서울에 이모가 살고 계셨고 당시 나는 교대를 다니고 있었으며 한 번씩 이모네 집에 놀라가곤 하여서 서울에 약속을 잡는 것이 큰 부담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방문하는 시기가 여름방학 기간인 7월 초이기도 하여서 시간도 가능했습니다.

  기다리던 여름방학의 그날,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가 묶고 있는 이태원의 호텔로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인사동을 함께 거닐고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선물도 건넸으며, 잘하지 못한 영어였지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때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긴 휴가를 받아서 여행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편지로만 이어가던 오랜 친구를 실제로 만날수 있었던 믿기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감동적이었던 만남 뒤로, 학생이었던 나는 그 당시 바쁜 공부 속에서 만남 이후 한동안 이메일을 하다가 또다시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던 30년 전에 언젠가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호주를 가고 싶다는 꿈으로 시작했던 펜팔친구와의 교류. 청소년기의 서신교환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인이 된 후 친구가 연락을 해주고 방문을 해주어서 20대에 만남으로까지 이어졌지만, 내 삶의 바쁨과 여유 없음으로 인하여 만남 이후 20년이 흘러버렸고 지금은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저는 아직까지 호주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지인분의 자제분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펜팔친구를 생각해 보니, 그동안 긴 시간동안 잊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쓸쓸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좋아했던 응답 하라 1988 드라마에서의 한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집, 두 집 다 떠나고 마을이 비게 됩니다. 기억 속의 추억은 현실에서는 영원하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는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버리면, 줄곧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되더라도 많이 어색합니다. 연락을 하는 것 자체가 참 어색하고 대부분은 친구가 생각이 나도 연락을 못하는 것이 보통의 일입니다.


  우리네 인생의 많은 인연들이 그러합니다. 그것이 오랜 인연이 소중한 이유입니다. 그만큼 가꾸고 소중하게 서로 노력해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서요. 하지만 꼭 쓸쓸하게만 생각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우선적인 희망은 영어공부를 다시금 꾸준히 해보는 것입니다. 혹여나 외국친구를 만나게 되더라도 지금의 회화실력으로는 진솔한 대화를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의미있는 인생의 기회들이 다가온다면 다시 다가가 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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