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 그 운동장에 가니,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
점심시간 급식을 먹으려고 줄을 서면 몇몇 아이들은 벌써부터 점심시간에 놀 생각에 들떠있다. 큰 운동장이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많다. 먼저 밥을 먹은 한 아이가 웃는 얼굴로 급식실 앞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여름이면, 나무 그늘이 있어서 시원한 우리 학교 운동장을 보면, 운동장에서 소고와 북을 들고뛰던 나의 그 시절이 생각난다.
3학년을 마치고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했다. 학생에게 전학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에게는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픈 사건이다. 주변인, 환경과의 유대가 끈끈한 학생에게 전학은 헤어짐의 의미일 수 있다. 정든 곳과의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가 함께 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새로운 학교에 와서 주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4학년에 대한 기억이 없었을 것 같다. 아마도 운동장 귀퉁이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책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봄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셨던 주 선생님은 조용히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무언가 결정을 하신 듯 몇 명을 부르셨다. 학교가 끝나고 남으라고 하셔서 잘못한 일이 무엇이지? 하고 고민을 하다가 방과 후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 남은 친구들을 보니, 반에서 좀 키가 큰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 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도 꽤 많이 모였다. 당시 그 클럽의 이름은 상설활동이라고 불렀다. 지금으로 하면 방과 후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어느새 나는 상설활동 농악부의 일원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교실에 아이들이 모인다. 칠판에 가득하게 장단이 적혀있었다. 한두어 달을 우리는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과 전체 장단을 외웠다. 솔직히 이 이후에 어떻게 수업이 전개된다는 것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노래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한 여러 소리들을 그냥 묻지도 않고 외웠다. 암기를 잘하지 못하는 성향 탓에 아마도 힘들었겠지?
몇 달이 지나고 아이들이 장단을 외우자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소고를 들었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연습, 또 연습을 한다. 일렬로 하다가 원이 되었다가 또 빙빙 돌았다가 얼마나 정신없었던지.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소고를 치면서 그냥 앞사람을 따라서 열심히 뛰었다.
뛰다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부딪히기도 했다.
당시 농악의 행렬은 꽹과리가 맨 앞을 이끌고 그 뒤로 징, 장구, 북, 소고가 따라갔다. 꽹과리, 징은 남자아이들이 맡았다. 흥겨운 가락과 함께 열심히 한판 놀아보는 연주를 계속 몇 번이고 하다 보니 아이들은 동작과 연주가락을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소고에서 북으로 악기가 바뀌어 채로 치고 있었다. 농악옷은 한복처럼 생겼는데 운동장에서 하거나 대회가 있을 때는 정식으로 착용을 하였다.
우리들의 연습 때 한 번씩 태평소를 하는 친구가 등장을 하면 그 소리와 동작에 모두들 감탄을 했다. 그 친구는 우리와 함께 연습을 하지는 않고, 선생님과 따로 연습을 하는 듯했고 가끔씩 나타나서 놀라운 연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후 몇 회의 대회를 거쳐서 지역에서 실력이 있던 농악대였는지 지역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열게 되는 기회를 얻어서 텔레비전에 출현한 적도 있었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나를 찾았다. 나는 1초 정도의 등장이었고 우리 가족만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 최초로 텔레비전도 나오는 체험까지 하면서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전학 온 학교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특기 신장을 위해서 관심이 있던 농악에 관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셨던 주 선생님 덕분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솔직히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성함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4학년 때 선생님만큼은 성함이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는 먼저 주 선생님 생각이 난다. 당시의 나에게 감사함의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 시골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방과 후에 아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을 접한다. 아이들은 드론, 피아노, 방송댄스, 영어, 보드게임, 스포츠, 컴퓨터 등 다양한 강좌에 희망에 의하여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80년대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뀐 것을 본다.
다양한 흥미에 따른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성실한 참여이다. 한 과정을 시작했다면, 힘들더라도 마무리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자신감, 실력이 더 성장해 가는 발판이 되어간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다 보니 무엇보다도 초등학교시절 방과 후에 배우면 좋은 것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시절에 꾸준하게 운동을 통한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힘든 공부의 과정에서 탄탄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참여하게 된 상설활동 농악부에서 소고와 북을 들고 뛰어다닌 덕분에 생긴 체력이 향상되었기에 주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전학을 하거나 친구와 즐겁게 어울리는 경험이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학교의 방과 후 혹은 토요일 오전에 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권유하고 싶다. 끝난 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이 형성된다. 바쁜 우리 학생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뛰어놀 시간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