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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고메리 Sep 08. 2023

14화.‘둘째가 있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생각한 그날

따뜻한 봄날 아이들의 미소가 생각난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둘째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이전에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유치원 교사였던 새언니도 나에게 말해주었던 것 같다.


“둘째는 천천히 터울을 두어도 괜찮아요.”

“첫째가 충분히 사랑을 받고 나서요”     


  큰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산후 조리원에서부터 내가 구체적인 육아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그랬다. 나는 미리 계획적이지 못하고 즉흥적인 면이 많다. 운명을 믿는다고나 할까?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선택들은 갑자기 결정된 것들이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모유수유가 어려울 거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친정엄마에게 오빠를 키울 때 모유가 부족했고, 친정오빠가 비위가 약해서 분유를 못 먹었고 어릴 때 잘 못 먹어서 몸이 약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많이 예민해졌다. 모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생각을 하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나는 모유가 부족한 체질이었고, 분유를 먹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책을 했다.

  조리원에서 식사시간에 미역국을 먹고 있는데, 식당으로 콜이 왔다. 신생아실에서는 아이가 깨서 울면 바로 콜을 해 주셨다. 아이가 운다고 하면, 마음이 많이 급해져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달려갔다. 미역국을 잘 먹어야 모유도 잘 나올 텐데, 미련스럽게도 그러면서 왜 모유가 부족할까 자책을 하면서 눈물도 나오고 그렇게 큰아이 신생아시기를 보낸 기억이 난다.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큰아이는 낯을 많이 가렸고, 낯선 사람을 보면 많이 울었다. 여러모로 어설픈 초보엄마였기에 육아가 많이 힘들었다.

  한때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는데 아이가 그곳에서 계속 울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모유를 끊고 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모유를 먹는 경우, 애착이 많아서 원에 적응하기가 더 어려워요”     


  첫 아이이다 보니 모든 선택에서 주로 육아서에 의존했다. 친정엄마도 돌아가셨고, 육아에 대한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육아서에서 나온 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맘카페에 질문을 했다. 친절하게 댓글을 많이들 달아주셨다. 맘카페는 당시 나에게 친한 친구이자 언니였다.

  당시 소아과 선생님의 두꺼운 육아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책을 얼마나 여러 번 정독을 하고, 형광펜을 칠했는지 지금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난다. 그 책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 보이지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당시에 동네에 알게 된 지인언니를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언니가 가끔 말해준다.


“그때 너는 큰애를 항상 안고 있더라,”

“내려놓지를 않더라고.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소심하기도 했고, 나름의 육아기준도 없었던 어설픈 초보엄마!

내 모습이었다. 아이가 울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했기에 큰 아이를 낳고 꽤 오랫동안 전혀 둘째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자, 강사일도 다니고 있어서 워킹맘의 생활이 꽤 고단했다.  

   


그날은 어느 봄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입주를 했고 단지 내 5살 반이 있는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어서 운 좋게 보내게 되었다. 바쁜 워킹맘이었기에 단지 내 동선에 어린이집을 보내니 참 좋았다. 일이 끝나면 어린이집에 5살 큰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아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 어린이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었고 조금 이동하면 또 큰 놀이터가 있었다. 두 곳 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들, 동생들, 형, 누나들로 가득했다.


매일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 그네, 미끄럼틀, 놀이터, 아파트 곳곳을 뛰어다니며 노는 큰아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5시 경 정도에 하원을 하면 1시간 혹은 그 이상을 놀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잘 뛰어놀고 들어가면 참 좋았다. 종일 어린이집에 있었기에 답답했는지 아이들은 참 잘도 놀았다. 그렇게 뛰어놀고 들어가면 밤에 잠도 잘 자고, 체력도 점점 좋아졌다.


  5살 반 친구들이 모두 어울려서 노는 것을 바라보고, 엄마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조용한 성격의 나도 아이엄마 지인들이 생겼다. 엄마에게도 좋은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니, 우리 아이 말고는 모두가 동생이 있었다.

대략 5~6명의 5살 반 아이들이 모두 동생이 있는 것이다.

희한했다. 4살 때까지만 해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드는 생각...     


‘우리 애만 동생이 없네’

‘둘째가 있었으면 좋겠어’

‘얼마나 예쁠까?’     


한번 둘째에 대한 생각이 들자, 늘 한 아이 키우기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봄, 그날의 놀이터가 생각이 난다. 놀이터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두 여엿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겠지. 귀엽던 얼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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