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8년 4월호
‘인간은 누구나 다 제 밥그릇은 달고 태어난다’는 말,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집안 어른들에게서 들어봤을 법하다. 사진가 박신우는 아내와 살림을 차리며 구입한 독일제 도자기 밥그릇 세트 중 유일하게 깨지지 않고 살아남은 마지막 1개를 마주한 2년 전 어느 날, 어른들의 이 말이 생각났다. 마침 생활 형편이 평탄치 않던 때라 자조적인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하나 남은 독일제 밥그릇이, 정녕 내가 배 속에서 달고 태어난 밥그릇이란 말인가. 문득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은 안녕한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2016년 7월부터 일 년여에 걸쳐,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밥그릇을 빌려 촬영하기 시작했다. 밥그릇의 질감을 돋보이게 하는 흑백 필름을 사용했고, 증감 현상을 더해 콘트라스트 입자를 최대한 거칠게 연출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밥그릇을 모아두면 ‘밥심으로 산다’는 동시대 사회의 에너지 원형을 마치 카탈로그 보듯 기록하고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energies 1> 아카이브가 완성되었고, 이어지는 <energies 2>에서는 일본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삼각김밥을 다뤘다. 박신우에게 한국의 밥은 쌀 본연의 형태를 그대로 수북이 담은 고봉밥이었고, 일본의 밥은 이동성과 편의성의 상징인 삼각형 오니기리였다. 한국인의 밥그릇과 일본인의 오니기리는 ‘나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점에서 영원히 다행이기도, 부담이기도 할 것 같다. <energies>전은 오는 4월 초까지 판교의 수하담 3층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cmmcnn.com
글: 김은아 기자 ⓒ월간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