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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Dec 06. 2020

[꿈글] - 파스텔 Prologue ~ 03

제가 쓰는 모든 소설과 이야기는 공통된 세계관 속에서 일어납니다.

파스텔 또한 헤델의 글과 공통된 세계관으로 다른 시점,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며, 제가 사용하는 세계관에서 주축을 이루는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



Prologue 



도착한 곳은 테이델프아. 비가 많이 오는 곳이다. 누워있는 채로 눈을 떴다. 저 멀리 신선한 초록색들이 줄기차게 이어져 기다란 능선을 만들어냈다. 내려오는 하늘빛은 더욱 선명하게 초록빛을 반사시켰다. 누워있는 바닥도 초록색으로 드넓은 초원이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다 초록색이네.

하늘은 파랬다. 구름은 천천히 흘렀고, 바람소리에 맞춰 녹색 잡초들은 수군거렸다. 내가 누군지 묻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허리를 들어 일어나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언덕 위에 있는 그 나무는 언덕을 다 덮을 만큼 우아한 가지를 뽐냈다. 나뭇잎은 하늘색과 보라색 그리고 노란색이 깃들어 있었다. 눈을 잠깐 비비고 다시 바라봐도 그 색은 변함없었다. 햇빛은 나무를 더욱 반짝이게 비췄다. 나무 옆에는 하얗고 곧 흘러내릴 듯 바람에 춤추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칼은 바람을 품은 듯 찰랑거렸다.

갈색 아니 밤색 아니 검은색인가?

머리칼은 바람에 춤추며 다른 색들을 만들어내고 고운 빛을 띄웠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덥수룩한 내 머리도 바람에 날려 눈을 콕 찔렀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원피스 치맛자락은 무릎 위까지 내려왔다. 나무 그늘 안에 있는 그녀를 그늘 틈새로 내려오던 빛들이 힘을 모아 비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아니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내 눈가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지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잊혀진 세계에 도착했다.





-레니아



‘따르릉 따릉’

 자전거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듯 신호를 주며 내 옆을 지나갔다.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날 때 옷깃은 기분 좋은 바람에 흩날렸다. 여름 바람이었지만 제법 시원했다. 지금쯤 아마 나는 개천 다리를 거의 다 지날 무렵일 것이다. 이제 오른쪽으로 꺾어 서른 발자국 정도 앞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열 발자국을 걷는 다면 나의 집에 도착할 것이다. 다리가 길어져서 보폭 길이가 변했다면 한 두 걸음 덜 걸어도 될 테지만 성장판은 한참 전에 닫혔기 때문에 발자국 수는 변함없을 것이다. 손에 들려있는 우산을 개천 위 은색 난간에 붙여서 걸어갔다. 우산과 난간이 닿아 드르륵하는 소리는 어느새 끝났고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 것을 소리 없이 알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개천 위 다리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노을이 저물어갈 때쯤 내가 서있는 다리 위가 젤리처럼 푹신하다고 생각하고 서서히 뒤로 힘을 풀고 쓰러진다. 그러면 어디선가 나타난 멋진 남자가 나를 붙잡거나 쓰러지는 나를 뒤에서 안아 잡아준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내년이면 계란 한 판으로 채울 수 없는 나이를 먹고 너무 유치한 상상인가 싶지만 여자는 운명을 믿는다. 운명이란 과대포장을 좋아한다.  믿는 운명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여자는 흡연자가 무심코 담배를 물 듯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젖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천 위 다리가 젤리라고 생각할 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언젠간 해야지 하다가도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머리가 깨지거나 바보가 되거나 할게 뻔해서 바보 같은 다짐은 금세 사라진다.

 개천 위 다리는 낭만스럽다. 물론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그곳을 걸을 때면 항상 꿈꾸는 기분이 들었다. 한 달에 많아야 두 번 정도 외출을 하는 나는 그 다리를 좋아했다. 나에게 외출은 휠체어나 보호자 없이 내 두 다리로 방이 아닌 바닥을 밟는 것이었다. 또 최소 삼십 분 이상 걸을 때 외출이라고 정했다. 남들에게는 고작 삼십 분일지라도 처음 나에겐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삼십 분이었다. 다리를 다 지날 때면 자동차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작은 사거리가 나오고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 알림이 귓가로 흘러온다. 그럼 나는 다시 뒤돌아서 우산을 난간에 대고 천천히 걸어간다. 바람을 느끼고 소리를 느끼고 나를 느낀다. 나에게 그 다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있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날 조금 무섭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용감하게 나는 걸어 나간다. 난간과 우산이 부딪혀 나는 소리는 나의 무서움을 천천히 데려간다. 혹시 몰라 비가 오게 되면 나는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비를 맞으며 우산을 나의 길잡이로 사용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일기예보를 보고 확실히 비 소식이 없을 때, 외출을 한다. 아마 땡볕에 우산을 가지고 걸어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웃었을지도 모른다. 딱히 상처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죽을걸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땡볕에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이나 똑같지 싶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지팡이를 사용했는데, 지팡이는 난간과 부딪힐 때 꾀 큰소리가 나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항상 부모님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지팡이는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다. 검은색 장우산만이 내 길잡이 거 되어주고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어느 날은 달려오는 아이와 부딪힌 적이 있었다. 다행히 우산은 옆 난간에 있어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아이의 부모님은 내게 달려와 큰 소리를 치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여(아마 고개를 숙였을 거야) 사과하고 울지도 않는 씩씩한 아이를 데리고 갈 길을 갔다. 나는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분명 그 아이의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놀란 내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 날 처음으로 개천 위 난간에 주저 않아 울었다. 오래되지 않았다. 작년에 그랬으니.



-로젠


 주황색 가로등 불빛에 담벼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군데군데 칠해져 있었다. 고작 오센티미터도 안될 것 같은 좁은 담벼락 위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건조한 눈빛으로 나를 흘깃 바라보더니 담벼락 아래로 휙-하고 내려가 집으로 향하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느긋하게 사라졌다. 어느 새부터 고양이들이 제법 많아지더니 새끼 고양이들도 여러 마리가 보였다. 길고양이들의 생존 방식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양이가 걸어갔던 길로 쭉 가다 보면 개천이 나오고 사십 미터 정도 되는 긴 다리가 나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개천에 물이 꽤 불어나는데 다리 위까지 넘치지는 않는다. 다리 밑에는 매일 커다란 그늘이 생긴다. 시간이 점점 저물면 그림자는 동쪽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가끔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려 보이기도 했지만 학교 점심시간에 몰래 도망 나왔는지 교복차림이었다. 어른들을 피해 몰래 피우는 건지, 그늘 밑에서 시원하게 피워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소란스러운 일은 없었다. 

 겨울에는 오후 여섯 시를 넘기지 못하고 어둠이 찾아온다. 개천 위 다리 위에는 가로등이 띄엄띄엄 있는데 그 마저도 불빛이 약하거나 안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겨울 저녁이 넘어서면 다리 위에는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았다. 오늘은 다행히 모든 가로등이 들어와 있었다. 어두운 다리 위를 지날 때, 혼자 가는 여자 뒤를 걷다 보면 왠지 모르게 내 발걸음을 재촉해 여자를 앞질러 가곤 했다. 나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난감한 상황도 있었지만 딱히 억울하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늦은 밤, 그곳은 어릴 적 내게도 아주 무서운 길이었으니까.

 개천 위 다리를 지나면 조그마한 사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 내가 즐겨가는 작은 책방이 있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끌림이 있는 책방이다. 평수는 그리 크지 않지만 높이가 높아 높은 책장이 책방을 가득 메웠다.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책들을 보면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데 남편은 특유의 친화력이 있다. 부담스럽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마르크니 테오’ 였는데 그로 인해 어느새 그 부부와는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 둘은 나보다 한 살씩 많았고 담배를 상당히 좋아했다. 시력이 별로 좋지 않은 내가 어슴푸레 책방이 보일 때면 담배연기도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책방이 있는 근처에는 내 직장인 도서관이 있었고 커다란 카페와 빵집이 여러 개 있었다. 라면으로 소문난 맛집도 책방 뒤에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많이 다니는 곳이라 가격대도 저렴했고 계절 상관없이 젊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시끄럽거나 소란스러운 장소는 아니었다. 근처에 술을 파는 곳도 작은 맥주 가게 말고는 없었고 그것도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호프집 느낌이었다. 차들도 혼잡하게 많거나 하지 않았다. 간혹 골목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있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 샤워를 했다. 도서관 안에 에어컨이 잘 작동되지 않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었다. 시원한 맥주를 꺼내려다 다시 냉장고를 닫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문화잡지를 펼쳤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한참 동안 책을 보는 게 내 일이었다. 물론 책을 펼치는 일은 드물었다. 책 번호에 맞춰 서가 정리나 도서배가를 하는 일이었다. 반납된 도서를 정리하던 중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토픽으로 내 눈길을 끈 잡지가 있어 빌려왔다. 전에 빌렸보았던 사람이 뭘 흘렸는지 군데군데 끈적이는 얼룩이 묻어있었고 끈적임은 아직 다 가시지 않았다. 잡지 오른쪽 하단에 ‘꿈 해몽’이라고 쓰여있는 호기심 가득한 제목 옆에 칠십 구페이지라고 적혀있었다. 딱히 꿈 해몽이 필요한 꿈을 꾼 건 아니고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칠십 구페이지를 펼치자 많은 꿈 내용이 적혀있었다. 돼지꿈은 좋은 꿈, 이가 빠지는 꿈은 좋지 않은 꿈 대충 이러저러한 꿈 해석이 가득했다. 별다른 재미를 못 느끼고 잡지를 덮으려던 찰나에 ‘시각장애인의 꿈’이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의 꿈?’


 제목을 보고서 문득 시각장애인도 꿈을 꾸는지 궁금해졌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면 분명 앞이 보일 때 보았던 것들이나 경험들을 꿈속에 나타날 것 같았다. 하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라면 단 한 번도 무언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희미한 빛조차. 아마 꿈을 꾸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못 꾼다고 안타까운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눈이 보이는 사람 중에서도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많았고 꿈을 꾸면 숙면은 취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해몽’보다 더 구미를 당기는 제목을 보자 나는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겼다.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각 이외의 오감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꿈을 꾼다. 촉각이나 청각적인 정보가 꿈의 요소로 작용되고 그 정보가 꿈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딱히 와 닿지 않았다. 무슨 꿈일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펼쳐져 있는 잡지를 만졌다. 잡지 특유의 얇은 종이 느낌도 들었고 새것처럼 부드럽진 않고 둔탁한 느낌의 느낌이 들었다.

‘이것만으로 꿈을 꿀 수 있을까?’

 어쩌면 그들보다 나의 촉각은 한참 뒤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오감이 궁금해졌고 그들의 꿈이 가장 궁금했다. 감은 눈을 뜨고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을 켜고서 ‘시각장애인은 무슨 꿈을 꾸나요?’ 재빨리 타이핑을 쳤다. 머릿속에 촉각이나 청각을 주시하고 있어서 그런지 나의 귀에는 노트북 자판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오전부터 할 일은 상당히 밀려 있었다. 반납된 도서들도 상당했지만 저번 주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이 도서정리를 도와줬었는데 책들이 마구잡이로 꽂혀 있었다. 한 두 개가 발견되자 몇 개가 잘못 꽂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한 번씩 모두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말고도 도서관 온라인 사무는 전적으로 내가 맡은 직무였다. 어제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인터넷 검색을 했었는데 새벽 한 시가 돼서야 허겁지겁 잠을 청했다. 

두 시간 동안 검색을 했지만 딱히 그들의 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얻은 정보는 생각보다 나처럼 시각장애인이 꾸는 꿈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 정도였다. 한 뉴스 기사에서는 많은 관객이 동원한 영화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그 영화에 등장인물은 청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청각장애인들은 영화를 관람할 수 없으며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것이었다. 또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지 않아서 비판의 파도가 거셌다. 한 번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시청각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배리어프리가 있다는 것도 어제 새벽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복지에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나는 씁쓸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영화 말고도 다른 문화적 공간에서도 분명 장애인들의 소외는 클 것이 분명했다. 가령 집 근처에만 가도 시각장애인들의 보행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 도서관에서는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를 취급한다. 내가 관여하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시각장애인들이 도서관에 종종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동네에 하나 있는 도서관이라서 그런지 복지나 문화를 앞장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서관 개방시간은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인데 따로 열람실은 오후 열한 시까지 개방을 해둔다. 오전에 도서관 이용자들이 거의 없다. 그때 시각장애인들을 볼 수 있었다. 

 온라인 사무를 보던 내 앞에 하얀 모자를 쓰고 온 한 사내는 책 두 권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점심시간마다 방문하는 도서관 이용객이었다. 딱히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모자를 쓰고 오는 사내였다. 매번 판타지 소설을 차례로 빌려가는 이용객이었는데 덕분에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도 인기작들을 몇 개 알게 됐다. 


“오늘은 두 권이시네요?” 

“네. 읽는 속도가 좀 빨라졌거든요.”

“많이 읽다 보면 다들 금방 읽으시더라고요. 반납일은 5월 2일까지예요.”

“참. 1층에서 보니까 도서배달도 해준다는데 정말인가요?”

“네 하고 있는데, 대상이 어르신들이나 장애인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그는 책 두 권을 가방에 넣고는 출입문으로 향했다. 어르신들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도서배달을 하고 있는 도서관은 우리 도서관밖에는 없었다. 처음 진행할 때에도 동네 주민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지금도 온라인으로 신청이 오면 내가 책은 가져다 3층 도서관 복지 도서부로 전달해준다. 일주일에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 신청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매번 이용하는 사람들 위주로 신청이 들어온다. 개인 신상정보와 요청 도서가 같이 공개되는데 장애인 분들이 대부분이고 어르신들은 한 두 분 이외에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오전에 들리시던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이 최근 들어 도서관에 나오지 않고 대부분 도서배달을 신청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은 온라인 사용이 어려워 전화로 신청하시는 게 많았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독서를 취미로 삼고 계셔서 읽고 싶은 책을 쉽게 고른다. 나름대로 도서배달 시스템이 잘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처음엔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불편한 온라인으로 되어있어서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았다. 전화로 신청하면 되긴 했지만 책 목록은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해도 책 목록을 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도서관에 방문한 대상자들에게 도서배달이 가능한 책 목록 부록을 하나씩 지급해드리고 시각장애인들은 따로 점자로 된 부록을 지급해 드리면서 점차 도서배달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도서배달은 대부분 녹음도서나 점자도서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녹음 시집이 굉장히 인기 있었다. 

 나는 오전 근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옆자리에 새로 들어온 여직원이 있지만, 오늘은 몸이 아픈 관계로 출근을 하지 못했다. 항상 같이 식사를 했었는데 꽤 오랜만에 혼자 식사를 하려니 메뉴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 대부분 그녀가 식사메뉴를 정하거나 맘대로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가곤 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혼자서 식사를 차리는 것이 가능할까? 보호자가 없다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먹기 어려운 메뉴가 있진 않을까? 뜨거운 걸 먹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 하나의 생각은 두 개 세 개로 번지고 안타까운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떠다녔다. 워낙 하나에 빠지면 집요하게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번거롭기도 하지만 나름 집요한 성격이 싫진 않았다. 해결하거나 알아냈을 때 쾌감이 짜릿하기도 했다.

 메뉴를 정하지 못한 것도 있고 딱히 밥 생각이 없어 도서관 뒤편에 테오가 운영하는 ‘4월의 서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같이 뭘 먹을 생각은 없었고 일주일 만에 가는 거라 잠깐 들를 겸 책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잘 빌려보진 않는다. 책을 읽을 땐 항상 구매해서 읽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서점에서 풍기는 새 책의 냄새나 처음 펼쳤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소설을 읽을 때면 책을 펼쳤을 때 하나의 세상이 튀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이 읽던 책은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릴 때 그 느낌이 순수하게 나를 서점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건물을 기준으로 왼쪽을 돌아서 조금만 가다 보면 서점이 바로 나오는데 오늘도 여전히 담배연기는 피어오르고 있다.



마르크니 그리고 로지



마르크니는 오후 열한 시가 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방에서 집까지 십 오분 정도 걸린다. 원래 여덟시 정도에 문을 닫고 로지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책들도 많았고 로지가 이사할 집을 알아보느라 오늘은 함께 서점에 있지 못했다. 무엇보다 마르크니가 집필한 ‘4월의 서점’ 책이 출간되어 책방에 들어오기도 했고 그는 늦은 시간까지 책장 정리를 기분 좋게 마쳤다. 그의 책방에는 대부분 소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설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 두었는데 ‘모그마인 헤델’의 작품은 따로 개별 책장에 두었다. 헤델은 젊은 층 독자에게 인기 있는 편이고 단편이나 짧은 글은 주로 쓰기로 유명했다. 또 마르크니는 헤델과 대학동창으로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다. 그 덕분에 마르크니도 읽기만 하던 소설을 나름대로 한번 써보면서 일 년정도 걸려서 ‘4월의 서점’이 완성됐다. 대부분 초판으로 5.000부에서 10.000부를 찍어내는데 작가가 아닌 마르크니는 인쇄소 지인의 도움으로 개인 사비를 들여서 자신의 서점에 둘 100부만 초판으로 인쇄했다. 물론 헤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마르크니는 헤델에게도 서프라이즈로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헤델은 항상 글을 쓸 때면 마르크니의 서점에 들렀는 데 마르크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마르크니의 발걸음은 통통 튀었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갈색 종이가방 안에는 ‘4월의 서점’ 한 권이 들어있었다.

 집에 들어온 마르크니를 안 쪽방 침대 위에서 로지가 반겼다.


“문은 잘 잠갔어?”

“응 잘 잠갔지. 열어 놔도 단골손님 말고는 들어올 일도 없을 거야.”:

“그래도 잠그는 습관 좀 가지지 그래? 자동차도 그렇고 지퍼도 말이야. 좀!”


 마르크니는 슬며시 고개를 떨궈 지퍼를 바라봤지만 열려있지 않았고, 숨죽인 로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 그는 자동차나 책방 문을 대게 열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처음은 자동차가 시작이었는데 덤벙거리는 성격에 키를 자주 읽어버려서 차 안에 키를 두고 내리는 버릇이 생겼다. 당연히 키를 두고 내려 차 문을 잠글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 서점에도 똑같은 버릇이 드는 것 같아 로지는 서점 문을 자물쇠가 아닌 자동으로 잠기는 형식의 도어록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마르크니는 은밀한 미소를 띠며 로지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 위에는 로지가 읽고 있던 얇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따듯한 우유가 노란 컵에 담겨있었다. 금방 데웠는지 김이 모락모락 떠오르고 있었다.


“씻고 올라오라고 항상 말하잖아!”

“아냐. 자려고 올라온 건 아니고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래.”

“꼭 올라와서 해야 될 이야기가 아니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마르크니. 그래도 양말은 벗고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마르크니의 얼굴엔 긴장이 묻어났지만 내심 자신감이 차있었다. 그리고 로지를 향해서 뒤에 숨겨왔던 갈색 종이백을 그녀에게 흔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시큰둥했고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4월의 서점’이 드디어 왔다고! 거기다가 오늘 두 권이나 팔렸어. 로지!.”


 로지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책이 팔려서 기뻤다기보다 마르크니의 해맑은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표정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관찰력이 뛰어났는데 지금 그의 기분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그녀는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정말? 축하해 마르크니.” 로지는 진심으로 마르크니를 축하했다.

“그런 김에 우유는 잠시 두고 맥주나 한잔 하는 게 어때?”

“맥주도 다 먹고 없을 거야. 내일 퇴근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아마 하는 길에 사러 가자.”

“아쉽네. 오늘 같은 날에 맥주가 없다니. 참 헤델한테는 비밀이야.”


로지는 책을 펼치며 대답했고 마르크니의 기분 좋은 발걸음은 화장실로 들어가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히카루의 달걀’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주인공인 무상과 마르크니가 어딘가 비슷하게 느끼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로지의 귓가에 마르크니의 흥얼거림이 흘러왔다. 원래 같았으면 시간이 늦었다며 잔소리를 했을 테지만 오늘 하루는 봐주기로 했다. 하지만 마르크니의 흥얼거림이 점점 커지면 로지는 침대에서 일어날 것 같았다.



아침이 되어서도 마르크니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기분 좋은 키스를 하고 아침밥을 먹을 때도 자신의 서점에 자신의 책이 꽂혀 있다는 게 좋다는 말을 연신 해댔는데 로지로서는 딱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마르크니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평소보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책방으로 향했다. 개천 위 다리에 들어서면서 마르크니가 말했다.


“책장 정리했는데 한번 봐줘 로지”

“정리는 나보다 당신이 더 잘하는 걸.”

“보고 잘했다고 칭찬해달라는 소리지 뭐.”


 로지는 마르크니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튀어나왔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마르크니에게 건넸다. 검은 필터 부분을 입술로 물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라이터를 찾았다. 마르크니가 로지에게 불을 붙여주고 둘은 서점 앞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두 사람은 짧아진 담배를 끄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책방으로 들어섰다.


“참. 마르크니 개수대에 놓을 주방세제 챙겼어?.”

“깜빡했어. 미안해 로지 얼른 다녀올게.”

“아냐. 청소하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로지는 말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기분 좋은 마르크니와 다르게 하늘은 회색 빛을 띠고 먹구름이 점점 끼고 있었다. 퇴근할 때쯤이면 아마 비가 계속 내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비를 싫어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옷이 젖는 느낌을 굉장히 싫어했다. 특히 바지를 입고 바지 밑단이 젖었을 때 느낌이 별로였다. 비가 올 때면 가끔 마르크니한테 업혀서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마르크니에게 업힌 상태로 잠이 들곤 했다. 어린 시절 연애를 할 때도 이상하게 마르크니에게 기대거나 업히면 금방 잠이 들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참지 못하고 비는 쏟아졌다. 다행히 로지의 옷은 별로 젖지 않아 로지의 기분에 별 타격이 없었다. 주방 세제를 들고 우산을 두 개를 챙겨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나만 챙기고는 책 방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생각보다 거세진 않았는데 오래도록 길게 내릴 것 같았다. 곧 장마가 시작될 기간이라 장마의 예고편 같은 느낌이었다.

 개천 위 다리에 들어서자 빗줄기는 점차 줄어들었다. 안개가 살짝 끼었는데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 커다란 검은색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다리 한가운데 펼쳐진 검은색 우산은 비를 연신 맞고 있었다. 우산에 점점 다가가자 검은색 우산은 하나가 아니라 커다란 우산 두 개가 한 할머니를 비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할머니는 작은 폐지로 돗자리처럼 깔아놓고는 가만히 앉아 로지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할머니의 앞에는 성냥들이 열통 남짓 있었다.


“아가씨. 성냥으로 태우는 담배가 더 맛있을 테요.”


 비가 오는 날씨에 성냥을 파는 할머니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딱히 성냥이 필요하지 않아 그냥 지나치려는 로지에게 노파는 말을 건넸다. 아마 마르크니였다면 얼른 다 사지 않고 뭐하냐고 로지를 재촉했을 것이었다. 로지와는 반대로 마르크니는 괜한 오지랖이 넓었다. 그런 영향으로 괜히 로지도 이런 상황에서 작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로지는 노파를 바라보며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담배를 끊어서요. 성냥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할머니.”


 담배를 끊었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내심 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다. 마르크니에게도 권했지만 별달리 끊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담배도 같이 줄게요. 필요할 거요.”

“네?”


 늙은 노파는 검은 다리에 성냥과 주머니에서 꺼낸 까만색 담뱃갑을 꺼내 넣었다.


“할머니 담배는 필요 없어요. 대신 여기 있는 성냥만 다 담아주실래요?”


 할머니의 표정은 상당히 인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로지는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고 마르크니가 옆에 있었다면 ‘할머니가 계속 비를 맞으며 파는 건 안타까운 일이야 다 사는 게 어때?’ 하며 로지의 머릿속을 헤집어놔서 열 개 남짓한 성냥만 얼른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


“성냥은 하나에 천 원이요. 한 사람에게 하나씩밖에 팔지 않아요. 그리고 담배는 필요할 것 같으니 가져가요.”

“담배는 정말 괜찮아요 할머니.”


 빗소리 때문에 서로의 대화가 그리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침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면서 검은색 우산 주변에는 점점 물이 고이는 게 로지의 눈에 들어왔다.


“잠시 가까이 와줘요.”

“네?”


 로지는 노파의 말을 잘 듣지 못했고 고개를 숙여 노파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노파는 로지의 귓가에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로지는 거센 빗소리에 정확히 듣지 못했다. 


“비가 오는 날이요?”

“옷이 다 젖었네요. 얼른 가봐요 아가씨. 나도 그만 일어서야겠어요.”


 로지는 바지 밑단이 흥건히 젖은 걸 보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할머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치 않는 담배와 성냥이 든 봉지를 품에 감싸고는 다시 책방으로 향했다. 마침 담배를 다 태워서 로지는 담배를 태우려 방금 받은 담뱃갑을 열었다. 하지만 담뱃갑 안에는 세 개비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순간 티브이에서나 볼법한 약이 들어있는 담배라던가 납치를 위한 용도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워낙 낙천적인 성격에다 호기심이 강한 스타일이라서 별 생각이 없었다. 정 불안하면 마르크니에게 먼저 펴보라고 해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면 장난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났다. 담뱃갑을 닫으려던 찰나에 봉지 안에서 종이쪽지가 손에 잡혔다. 종이쪽지를 펴자 담배 사용법이라는 낡은 글씨가 적힌 설명서였다. ‘담배에도 사용법이 있나? 특이하네’ 로지는 설명서를 읽었다. 설명서는 두 문장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두 번째 문장은 몇 글자를 제외하고 찢겨 있었다. 첫 번째 문장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담배라고 적혀 있었고, 두 번째는 ‘비가 오는’이라고 네 글자를 제외하고 모든 글자는 찢겨 있었다. 그녀는 아까 잘 듣지 못한 노파의 말이 비가 오는 날에 피우라는 소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십 년 정도 시놀드에서 거주하면서 이런 특이한 일은 처음이었다. 좋은 동네긴 해도 모든 동네 주민을 다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혀 처음 보는 느낌의 노파였고 로지는 뒤늦게 경계심이 찾아왔다. 개천 위 다리가 오늘따라 길게 느껴졌고 뒤를 돌아보자. 검은색 우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순간 로지는 서늘한 기운이 들었지만 바지 밑단이 젖은 것이 더 기분을 상하게 했다. 


 로지는 책방에 도착해 십 분여 전에 일에 대해서 마르크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야기했다. 마르크니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편이라 그가 일을 할 때, 말을 걸거나 뭘 물어보지 않았다. 마르크니는 항상 로지라면 하던 일도 멈추고 그녀에게만 집중을 하는 편이라 일이 늦어지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당장이라도 마르크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그녀의 평소 마음을 이겼다. 그는 잠자코 듣더니 로지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가 제일 보고 싶어?”

“그야 당연히 내 첫사랑이지”

“첫사랑? 그게 누군데?”

“있어. 아주 노래를 잘하는 남자.”

“미안하지만 그 담배는 날 줘야겠어. 로지. 내 와이프가 다른 남자에게 재혼 프러포즈받는 건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지.”

“장난이야. 당장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딱히 없는 걸? 그럼 당신은 누가 제일 보고 싶은데?”

“그 할머니가 제일 보고 싶은데?”

“그게 뭐야. 바보”


 로지는 마르크니의 바보 같은 대답에 웃음 지었다. 둘의 대화는 항상 한결같았다. 남들에게는 시답지 않은 대화가 로지에게서 웃음을 자아냈고 지금의 두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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