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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Sep 30. 2020

[이명성] 오타마톤과 함께 노래를

'파격 Sale! 현을 잡고 기계의 입을 벌리면 원하는 소리가 납니다.'

오늘 난 괴상한 악기 하나를 샀다. 평소에는 흘긋도 않던 낡은 구멍가게인 데다 현금 결제만 된다는 고루하고 합법적이지 못한 장사에 불구하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적신 감성에 젖어 마침 지갑에 있던 현금을 꺼내 아무튼 사 버렸다.

서늘한 골목길을 헤치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캄캄하다. 낮이 벌써 반토막 난 걸 보니 여름이 끝난 모양이지. 트렌치코트를 옷걸이에 걸고 손을 비누로 꼼꼼히 씻은 뒤 팩 두유를 컵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워 냈다. 헛헛한 속에 뜨끈한 콩물을 졸졸 부으며 신발장 앞에 놓인 상자를 곁눈질했다.

'귀여운 오타마톤과 함께 연주해봐요'

상자를 칭칭 감은 포장용 테이프를 북북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이런 것도 악기란 말야? 커다란 대가리에 그려진 귀여운 얼굴이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있고, 그 위로 기다란 음표 꼬리가 붙어 있었다. 8분 음표에서 디자인을 따온 것 같은데 우리 집 주방에 있는 플라스틱 국자가 떠오르는 모양새였다. 우파루파(혹은 멕시코도롱뇽이라고도 한다. 찰리의 작은 친구 움파룸파족과는 다르다)처럼 반들반들한 낯이 묘한 불쾌감을 준다. 광택 없는 눈을 마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설명서를 꺼내 읽었다. 그러니까 이건 현이 없는 바이올린과도 비슷하. 막대 모양 센서를 위아래로 요리조리 움직이며 대가리의 볼을 꾸욱 눌러 입을 벌리면 연주할 수 있단다. 시험 삼아 몇 번 뚱땅 거려보니 웅앙웅앙, 애매하게 사람 목소리 같은 소리가 고저를 두고 흘러나왔다.


머릿속을 스치는 곡조를 흥얼대며 이 기묘한 악기를 서투르게 연주하다가 결국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원하는 소리를 낸다는 말에 혹해 집어 오면서도 알고 있지 않았겠어.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악기가 어디 있던가. 기껏해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꾸며 내는 오타마톤을 들고 있자니 스스로가 웃기고 또 가여웠다. 이 우스꽝스럽지만 다정한 친구와 함께 달이 아파트 옥상에 걸리기 전까지 같이 노래해야겠다. 혹시, 언젠가 내가 원하는 그 소리를 들려줄까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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