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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22. 2021

당신, 왜 그랬어요? 7화

애정은 그렇게 중독되었다.

“증인 378호, 왜 그랬어요?”


애정은 세 번째 반복되는 질문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질문자 너머의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어깨엔 한때 올망졸망 귀여운 테가 났을 법한 얼굴이 오랜 풍화를 거친 유물처럼 달려 있었다. 거구의 몸집 때문에 원래도 작은 머리통이 더욱더 작아 보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을 피하던 애정은 눈앞에 죽은 강아지의 사체 사진이 연속해서 나타나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눈꺼풀 안쪽으로 끔찍한 이미지가 연속해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애정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 저었다.


“악!! 제발 그만요.”


눈앞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어린 퍼그가 사냥용 덫에 걸려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죽어있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나자 그는 다급히 외쳤다.


“제발 멈춰요. 말할게요.”


애정이 처음으로 기른 강아지 ‘스노우’도 갈색 퍼그였다. 눈이 내리던 날 선물 받았던 그의 유일한 형제였던 퍼그는 달동네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있잖아요. 우리 집이 나 어릴 때 잘 살았어. 조막만 한 얼굴에 눈이 땡그란 애가 기사 딸린 차 타고 백화점 가면, 어른들이 구름같이 몰려와서 나보고 예쁘다며 사탕이나 젤리를 쥐어줬어요. 그렇지만 난 알았지. 이건 내가 아니라 내 부모의 돈 때문이란 거. 애들은 생각보다 영악하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요. 눈치가 빠른 거랑은 다른 이야기야. 무튼 백화점 점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서 내 환심을 사려고 그렇게 애를 썼어. 그래야 우리 엄마도 흡족해서 지갑을 열 테니까. 난 그걸 이용했죠. 더 못되고 도도하게 굴었어요. 다 큰 어른들이 나 같은 꼬맹이 앞에서 쩔쩔매는 꼴이 웃기잖아.”


여자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근데 대학교 4학년 때 집이 망했다고. 꼬박꼬박 다니던 피부과랑 미용실, 네일숍을 갑자기 다 관둘 수밖에 없었지. 내가 봐도 금방 얼굴이 달라지더라고. 이목구비는 같아도 날 비추던 핀 조명이 사라진 거 같은 거지. 강 건너 이사하면서, 값나가는 건 다 빚쟁이들한테 넘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출하려고 보면, 마음에 차는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 이런 게 하나도 없는 거야. 그전에 애들이 난 뭘 입어도 귀티 난다고 했었는데, 그건 명품을 휘감고 그 사이에 하나씩 시장에서 산 것들을 걸쳤을 때 말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구려로만 입어보니 알겠더라고. 그런 건 없어요. 티셔츠도 드라이해서 입던 내가 한 장에 몇 천 원짜리 윗도리를 사 입고 스스로 빨고 앉아 있으니까, 이게 정말 현실이란 것이 믿을 수가 없었어.


게다가 그런 꼴로 다니니까, 그렇게 알아서 눈치 보던 판매원들이나 식당 종업원 이런 것들이 이젠 날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대하더라고. 괘씸하게.


 그래서 그랬어요. 에르메스가 뭔지도 모를 그 돼지 껍데기집 여자들한테 내가 잃어버린 스카프 내놓으라고 지랄을 떤 거야. 이미 수년 전에 빚쟁이들이 챙겨갔지만 내 기억 속엔 또렷했거든. 무늬랑 색, 가격까지.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주 자세히 설명했지. 그땐 매장 안에 카메라 같은 건 흔하던 시절이 아냐. 그렇게 해서 처음 무릎을 꿇린거야. 근데 그렇게 한 번 시작하니까, 성질이 뻗치는 날엔 무슨 마약 중독자처럼 그렇게 무릎을 꿇리고 싶어 지더라고. 나한텐 원래 그게 정상이었으니까. 언니가 나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애정의 마지막 말은 이미 질문이 아니었다.


“근데, 도대체 누구...... 세요? 경찰? 언니. 나 있잖아. 딱 한 번만 봐줘.”


애정은 단단한 껍질 안으로 숨는 소라 게 마냥 몸을 한껏 구긴 채 검지로 ‘딱 한 번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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