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자 농부 Oct 22. 2021

당신, 왜 그랬어요? 8화

강구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누구일까?

“증인 1691호, 왜 그랬어요?”


강구의 눈과 코에서 물이 주룩주룩 새 나왔다. 냇가에서 땡땡 불어 떠오른 시신을 발견했던 일곱 살 때부터 물은 그에게 가장 큰 공포였다. 다 헤진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엄지와 검지로 코를 쥐어서 팽 푸는 그의 몸에선 끙하는 소리가 났다. 그가 낸 소리라기 보단 경첩이 녹슨 문을 열 때처럼 저절로 나는 소리였다. 어디로 갔는지 머리를 쳐 박혔던 스테인리스 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가 카악 퉤,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왜 그랬냐면 나이가 드니까, 안서더라고. 어느 날부터, 별 지랄을 다해도 서지가 않는 거야. 젖탱이 큰 양년들 나오는 잡지를 봐도, 반응이 없는 거지. 근데 아랫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가 밤마다, 아니지, 주말엔 아침이고 낮이고 뭐 없어,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붙어먹는 거야. 아랫집 여자 신음소리가 정말...... 남자 애간장을 녹이는...... 그런 소리였어. 그 집 사정은 몰라도 저거면 된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지. 싸구려 자재로 지은 원룸 건물이라 방음이 형편없었어. 예전엔 그 덕에 딸딸이도 치고 그랬는데 이젠 그 마저도 안 되는 거라.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죽겠는 거지. 씨이발. 나중엔 지독하게 서럽대. 원래 복도 없는 놈이 지질히 복도 없다 싶어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외 불알이야. 응? 나오다가 하필, 거기가 껴서, 터진 채로 나왔다니까. 날 때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강구는 손톱이 성하지 않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처음엔 술을 진탕 마시고 질질 짜기도 했는데. 두어 달쯤 되니까 나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고. 현장에서 철거할 때 쓰는 이따만한 망치랑, 벽돌, 나무 막대기, 이런 것들 있잖아. 죄다 집으로 가져왔어. 벽돌도 바닥에 떨어뜨려보고. 나무에 못도 박고. 드릴로 벽에 구멍도 뚫고, 그랬지. 특히 그 여자 혼자 있는 낮에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시끄럽게 굴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남편 새끼가 올라왔더라고. 약이 바짝 올라서, 문 두드리고 소리치고 지랄하는데, 안 열어줬어. 그냥 없는 척하면 그만이야.


뭐 어쩔 거야. 건물 주인은 미국에 사는 놈이라 오촌 조카라나 뭐라나, 건물관리를 젊은 놈한테 맡겼는데 거의 얼굴을 안 비췄거든. 그렇게 지랄을 떨고 있으면 이상한 희열이 느껴지더라고. 응? 안서도 그나마 그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대. 2년을 그랬지, 거진 2년을. 아랫집 것들도 지질히 돈도 없는지 다른 데로 이사 갈 생각은 안 하는 거 같더라고. 내가 낮에 그러고 있으면 그 여자가 약이 올라서 막대기 같은 걸로 천장을 쿵쿵 치기도 하고, 존댓말 했다가 쌍욕 했다가 소리 지르고 난리였는데, 난 그게 그렇게 이긴 거 같고 좋은 거라. 지가 뭐 어쩔 거야. 뭐, 뭐, 근데 그 집 애 떨어진 게 내 탓이야? 그냥 그것들도 더럽게 복도 없는 거지. 아니지...... 그것들은 사람 쓸 돈도 없을 텐데. 아...... 김 씨가 보냈어? 송 씨인가? 화투 치다 몇 푼 좀 빌린 거 가지고......”


강구는 갑자기 비굴한 미소를 띠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상체를 깊숙이 숙여 이마를 바닥에 바짝 대고 말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 진작 말씀을 하시지. 저, 계좌로 입금할 테니, 일단 집에 보내주세요. 보증금 빼서 준다고 전해달라고요. 내일까지, 아니지, 오늘 바로 입금한다고요.”

이전 18화 당신, 왜 그랬어요? 7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