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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22. 2021

당신, 왜 그랬어요? 10화

재이의 앞에 영이 나타났다. 도대체 영이 어떻게.   

“증인 997호, 왜 그랬어요?”


재이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더니 앵무새처럼 같은 질문만 반복하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어디에서도 자신이 있는 장소나 상대방의 정체에 관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자, 그녀는 결심한 듯 늘 자신을 구했던 문장 하나를 뱉어냈다. 이번에도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저희 부모님께서 두 분 다 법조계에 오래 계셨어요. 외동딸이 사라진 걸 발견하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제 동의도 없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부모의 배경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적재적소에 이용하는 것은, 무거웠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는 합리적인 교환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눈빛이 강하단 말을 자주 들었던 재이는 상대의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던 순간, 그녀의 눈앞에 영원이 나타났다. 이별 후에도 재이는 늘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고 확신했다.


“영이 왜 여기에...”


재이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영원은 대학 졸업 후 헬싱키에서 환경건축학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 중이었고 둘은 못 본 지 7년이 넘은 상태였다.


“재재, 나야. 그날 일 말이야. 이야기해줘, 왜 그랬었는지. 너 같은 아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영원이 묻는 다면 재이는 모두 말해줬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영원은 무엇이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운 날에는 말하지 않아도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가장 근사치의 재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 근사치란 게 근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준 것도 그 사람이었다.


 

“아빠가 저보다 그 물고기들을 더 좋아했어요. 그게 열한 살 꼬마에겐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던지. 시험 전과목 백점을 맞아도, 미술대회에서 은상 탔을 때도, ‘그래, 잘했다,’ 한마디만 하던 아빠가 그 물고기들을 바라볼 땐 애정이 가득했어요. 그거 아세요? 부모가 대학입시 전국 순위권 출신이면 그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하는 건 그냥 당연한 거예요. 모두가 난 그냥 날 때부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죠. 반 1등을 놓칠까, 쫓기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무튼 아빠는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징그러운 잉어들 밥을 챙기거나, 수초들이랑 물 상태는 어떤지 들여다봤어요. 심지어 술 취해서 들어온 날에 도요. 그날은 집에 왔더니 아빠가 혼비백산해서 화장실이랑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가만 보니까 아파트가 낮에 정전이 되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원래 어항에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 장치에 전원이 끊긴 거죠. 고기들이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 있었을 테죠? 전날 밤새고 들어온 아빠가 그걸 보고 눈이 뒤집힌 거고.


화장실 쪽으로 가서 보니,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어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죠.


아가미 호흡을 하는 물고기한테 그게 가당키나 한가요? 전 그 광경을 얼어붙은 채로 지켜봤어요. 저 남자가 미쳤구나. 4학년짜리가 자기 아빠를 향해 극도의 경멸을 느꼈어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재이는 심호흡을 연습하는 사람처럼 아주 길고 가는 한숨을 뱉어냈다.  


“근데 정말 목숨이 질겼던 한 마리가 살아난 거예요. ‘재이야, 산수강산이 살아났어’라고 외치며 어찌나 감격하던지. 전 그 이야기를 듣고,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죠.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더니 깜깜한 밤이었어요. 숙제는 열어보지도 못했고......그 걱정부터 드는데,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엄마는 재판 때문에 야근 중이었고, 아빠는 까맣게 잠들어 있었죠. 눈치 없이 배가 고팠는데, 거실을 둘러보니, 깜깜한 집엔 파란 등이 달려있던 그 어항과 저뿐이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불어 터진 사료 몇 알갱이가 수면에 떠 있었죠. 열 마리도 넘게 있던 그 넓은 수조에 혼자 남아 유유히 헤엄치는 그 ‘산수강산’이란 말도 안 되는 이름의 잉어를 보는데 구역질이 났어요. 비늘만 해도 내 손톱만 한 것이 덕지덕지 붙은 데다, 멍청한 대가리를 달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하는 꼴이라니. 같이 있던 형제인지 친구들 인지도 모를 무리가 전부 죽은 것도 몰랐겠죠. 그래서 제가 그 산소공급 장치를 껐어요. 그리고 스누피 그림이 그려져 있던 탁상시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죽은 걸 확인하고 나서 전원을 다시 켜 뒀죠. 그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숙제를 하지 않았어요.”


재이는 긴장으로 위가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면 영원은 어떻게 알았는지 다가와 가만히 손을 잡거나 아주 느린 동작으로 안아줬다.


“그 후로 전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초밥도 끊었죠. 일 때문에 고급 일식집에 갈 일이 많은데, 전 그런 곳에서도 우동이나 메밀면만 먹는다고요.”


시종일관 앞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재이는 고개를 돌려 흐릿해진 두 눈으로 검은 허공을 바라봤다. 텅 빈 공간을 향해 그녀는 물었다.


“영, 넌 이해하지?”






물고기 사진 출처: 연합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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