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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19. 2021

틈 1화

서른 살 아운은 대학교 동아리 홈커밍 파티에서 동기 훤을 다시 만났다.

‘결국, 그리는 건 나’ 홈커밍 파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학교 앞 호프집 입간판에 형광 노란색 글씨로 인사말이 쓰여 있었다. 스무 살 아운은 동아리 이름에 끌렸었다. 입시미술 때문에 한동안 그림이라면 끔찍했었는데 동아리원들은 대부분  비전공생이란 점이 좋았다. 물리나 경제를 공부하는 들은 입시미술의 공식을 몰랐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릴 줄 알았다. 덕분에 아운은 다시 그림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리 이름의 뜻에 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는 주체가 나라는 건지, 그려지는 대상이 나라는 건지를 두고 술자리에서 파가 나뉘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흥분했던 스무 살, 스물한두 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불과 칠팔 년 전의 일인데 꼭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는 게 이상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지하 호프집의 유리문을 열자, 싸구려 멜로디카드에서 흘러나올법한 캐럴이 울려 퍼졌다. 아운의 등장에 긴 테이블에 앉아있던 몇몇이 손을 들어 아는 체 했다.


“사랑은 12월 초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거야. 생각만으로도 설레. 그런데 캐럴을 1월에 들으면 어떨까? 좀 지겹지. 이젠 좀 그만 듣고 싶은데 싶고. 캐럴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것. 그게 이별이지. 사람들은 서로가 변했다며 돌아서지만 사실 사람은 변하기 어렵잖아. 변한 건 마음이야.”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건축학과 선배 도운이 예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큰소리로 이야기하면 자신의 말이 진실이 된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근데 캐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월에도, 8월에도 캐럴을 좋아하지. 진짜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요.”


아운이 도운의 건너편 빈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맞아. 하지만 그건 정말 소수의 캐럴 마니아라고 할 수 있지. 살면서 한 명쯤 만나기도 어려운 정도로 드문 경우고.”


드물다. 아운은 드문 쪽에 속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부분 취직을 택한 동기들과 달리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을 했을 뿐인데, 그걸 두고 용감하다느니, 역시 예술가는 다르다느니 하는 말들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선택지가 주어지면 각자 조금 더 쉬운 쪽을 택하는 것일 뿐이고, 아운에겐 그림을 그리는 일이 더 쉬웠다. 어려워진 것은 기부금 조의 동아리 홈커밍 파티 회비를 넉넉히 내거나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한남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는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제로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그러려니 했지만, 어떤 날엔 좀 덜 드문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잠깐씩 바라기도 했다. 아운이 조용히 생각에 빠진 사이 주제는 그 자리에 없는 동아리원들의 근황으로 옮겨갔다.




사진출처: 서대문구청 티스토리 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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