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바빴던 하루를 마치고 가까운 호숫가에 앉았다. 내 맘대로 별자리라도 그리고 싶은 하늘이다. 수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마감의 압박에서 도망치듯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조용히 물가의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약돌은 슈웅 하고 수면 위로 날아가 툭 하고 떨어져 고요했던 수면 위에 동심원을 그렸다. 조약돌의 작은 떨림이 호수 전체에 어떠한 울림을 주었다. 그 형태를 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입자들이 고요 속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구성되는 세상을 떠올렸다.
"잘 됐니?"
우연히 그녀가 나와있었다. 이런 걸 기적이라고 불러도 될까. 생각하고 원했던 건 항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나 이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일이다. 결과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대로 기적이라 불러도 되는 일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 고민이 많구나."
그녀는 털어놓으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서슴없이 수많은 낱말들을 뱉어냈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혼자 머물러서 무언가를 해내는 행위밖에 없다. 만나는 이도 없고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늘 고요함만이 남았다. 계속 무언가를 습득해도 그것을 알아주는 이 없고 소통할 수 있는 이도 없었다. 무엇인가를 보여낼 수 있을까 고민해도 항상 예측된 자극이 다가와 그것이 나의 몸을 거쳐서 만들어내는 정해진 반응만이 반복되었다. 그것 외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상사에게 지적을 받고 말았다. 언제나 힘 있고 자신 있게, 그리고 똑똑하게 일을 해결해 온 나였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졌다. 역시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누구와도 다를 것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해. 사람의 감정이 학습된 것일지라도, 우리가 일으키는 떨림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어. 설령 모든 것이 정해진 반응이라 해도, 그것을 느끼는 건 언제나 너고 그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결국 너야. 그러니 이 순간에도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힘을 내고 있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맞아요. 하지만.. 사실 너무 외로웠어요. 이 마음을 간직하고 싶지만 잊히고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나를 가장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은 외로워질 순간 밖에 없거든요. 그럴 때마다 별을 보고 싶어서 이곳에 나오곤 했어요. 외롭고도 어두운 공간이지만 유일한 안식처인 저의 보금자리를 다시 그리워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솔직해진 순간이다. 뭐랄까 이 감각은 참 묘하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감정을 정의하는 일은 참 어렵다. 물질의 교환과 반응으로 설명하려 해도 그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늘 의문점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물과 바람, 나무에 빗대어 감정을 표현하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 자신을 알아달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처럼.
“맞아. 참 아름답네. 밤을 기대하는 이유는 별이 빛나기 때문이지. 한 없이 밝을 때는 그 존재를 모르다가, 밤이 와서야 비로소 환히 모습을 드러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저 별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와 우리가 여기에 서서 각자의 존재를 손으로 느끼며 소통할 수 있는 이유가 같다는 걸. 우리가 아무리 작은 존재이고 저 먼 곳에서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지만, 차지하는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이유로 움직이고 있어. 저 모습은 그저 끊임없이 열을 내뿜고 숨 쉬는 것일 뿐인데, 그저 우리에게는 정말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느끼도록 우리가 자라온 사실이 난 너무나도 경이로워. 석양의 빛깔이든, 새가 날아가는 모양이든 별의 빛이든 그 모습을 통해 행복을 깨달으며 살라는 의미겠지. 너도 이 의미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한 행복을 유지한다면, 꼭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한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언젠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실은 지금 내 앞에 있다.
"솔직히 네 말에 동의해. 세상의 모든 것은 정해져 있어. 들리고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에 대한 반응은 유전적 구조가 만들어 내는 신경 작용의 결과일 뿐이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때때로의 행복에 의해 살아가는 의지가 태어나고 다시 소멸되지. 내일도 그럴 거고, 오늘도 그랬어. 세상에 존재하는 암적인 것들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가끔 깊은 우물 속에 갇힌 채 피어나는 순수한 웃음을 띠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해. 너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드네.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마음에 들진 않아. 어쩌면.. 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원하던 답변의 형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논리를 곁들이지 않는 답변은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뱉어진 소리는 휘어진 공간을 따라 내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고요히 몸의 어딘가를 자극해 무언가를 떨리게 했다. 그리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더 이상은 놓칠 수 없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끌어낼 때이다.
"맞아요. 별만큼 아름다운 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절대적으로 같을지는 몰라요. 오직 내가 관찰하는 것에 대한 물리량이 의미가 있지요.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의 존재를 논할 수 없어요. 끊임없이 그 존재에 대한 파동함수가 진동하며 무수한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보이는 순간 그 외의 우주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한 채 비로소 그것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남게 되지요. 당신이 없는 우주가 있을 수도 있고, 어제의 제가 사라져 버린 우주가 존재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붕괴해 버렸어요."
나의 말이 어떠한 의미인지 그녀는 눈치를 채는 듯했다. 돌아오는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본다는 건 기적과도 같아요. 세상에 태어나고, 그 형태를 성장시키며 지금으로 오고 어제의 나를 오늘도 다시 맞이해요. 모든 것이 마찬가지죠. 어제의 당신을 오늘도 본다는 건 기적이에요. 엄청난 시간이 흘러 그 행운의 순간을 뚫고 당신을 지금 마주했어요. 그러니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보고 느끼는 그 무엇은 불행하고 고통스러울지도 몰라요. 당신의 우주에서 자신은 고통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의 우주에서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어요."
이제 다 왔다. 그녀의 눈망울이 조금은 커졌다.
"아름답다는 말을 하시는 걸 보니, 우린 지금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