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고 횟집만 가라는 법 있나?
우리가 처음 차박을 한 건 5년쯤 전이다.
중고 SUV를 사서 2열을 접었다. 완벽하게 평탄화가 되는 차였다. 자충매트를 깔고, 집에서 안 쓰는 이불을 폈다. 바로 잘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들뜬 마음으로 날을 잡아 바다로 향했다. 와이프는 퇴근 후 피곤한 나를 대신해 운전했다. 나는 호기심에 평탄화한 뒷자리에 누워 갔다. 진동과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다리를 쭉 뻗고 누워 갈 수 있다는 점은 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가는 건 불법일 것 같다.)
양양에 있는 하조대에 밤 11시가 넘어 도착했다.
첫 차박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조대 해수욕장 근처의 후미진 도로에 차를 세우고 잠을 잤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하고 온 상태라 따로 뭘 해 먹을 필요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온몸이 찌뿌둥하고 목은 칼칼해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아무리 세차를 했다고 해도 중고차여서 숨어 있는 먼지들까지 제거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실내가 매우 건조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불편했다. 하지만 해가 뜰 때 선루프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트렁크를 열었을 때 펼쳐진 바다 풍경은 잊을 수 없었다.
첫 차박은 낭만적이었지만 몸은 힘들었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바다로 향했다. 9월이라 낮에는 아직 더웠는데, 바다를 보니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약 30분쯤 바다를 거닐다가 밥 먹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주로 횟집이 많이 보였는데, 오전부터 회를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탕 종류를 찾다가 최근 가장 핫한 인구 해변에 있는 섭국집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운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어촌마을 물회섭국
1층에는 포장마차 술집이 있고, 2층에 식당이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리모델링을 했는지 실내 인테리어가 감각적이고 깨끗했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메뉴는 심플했다. 물회와 섭국, 두 가지뿐이었다. 우리는 각각 하나씩 주문했다.
자연산 물회는 1만 7천 원으로 싸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꼬시가 많이 들어 있었고, 국물이 너무 차갑지 않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찬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데, 이 물회는 얼음이 적당히 들어 있었다. 회는 쫄깃쫄깃하고, 따로 나오는 소면도 잘 익었다. 다만 한 입에 넣으면 끝날 것 같은 적은 양이 아쉬웠다. 그래도 전체적인 양은 보통 수준이었다.
다음으로 가장 기대했던 섭국이 나왔다.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났다. 기본 육수에 공을 들인 게 느껴졌다. 각종 채소와 팽이버섯의 식감은 쫄깃쫄깃했고, 섭(흔히 말하는 홍합)은 싱싱했다. 잘린 홍합이 여러 개 보였고, 수제비는 두껍지 않고 얇아서 먹기 편했다. 뜨끈한 국물이 계속 들어갔다.
물회 한 젓가락을 먹고 섭국 한 숟가락을 가득 퍼 입안에 넣으면 바다 향이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 기분이다. 물회에 있는 소면을 후루룩 한 입에 넣고 곁들여 나온 인절미 한 개를 먹으면 짠맛과 단맛의 조화가 느껴진다.
여기까지 먹고도 배가 차지 않는다면, 무료 셀프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밥을 국물에 말아먹으면 된다. 한 공기 가득 밥을 퍼 남은 섭국 국물에 넣고 자박하게 비빈 후, 시금치나 콩나물, 혹은 어묵을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야말로 맛있다.
식당에서 물회와 섭국을 배부르게 먹으니 차박으로 지친 몸에 기운이 돌았다. 힘이 나면서도 졸리긴 했지만, 먹자마자 누울 수는 없었다.
차를 식당 앞에 세우고 인구 해변을 한 바퀴 돌며 소화를 시켰다. 사람 구경, 바다 구경, 서핑 구경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해변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차로 돌아와 잠시 누웠다. 배도 부르고 다시 한숨 자고 나니 1시간이 지났다. 배 속에서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이곳은 좋은 재료를 깨끗하게 요리하는 곳이 맞는 것 같다.
양양 바다를 방문한다면, 이곳 어촌마을 물회섭국 집은 꼭 들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