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by 김무균

2017년 10월 22일 호치민의 한 호텔에서, 휴식시간이었다. 낮잠을 청하려다 가지고 간 책 두 권 중에서 작고 얇은 책을 꺼내 침대에 누워 읽기 시작했다. -다른 한 권의 책은 읽다만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처음에는 50페이지 정도만 읽고 낮잠을 자려했었다. 베트남전 당시 대통령궁을 관광하고 어느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먹고 난,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읽다보니 유명한 만큼 내용이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고, 예전에 한 번 읽었던 듯한 기시旣視가 느껴졌다. 게다가 가끔씩 발견되는 책의 오기誤記가 계속해서 눈에 거슬렸다. 작가의 인생과 소설이 크게 다른 점이 없어, 체험수기인지 소설인지 구별이 잘 가지도 않았다. -물론, 일본 작가의 유명한 소설중에는 이런 소설이 매우 많다. 이상李箱의 ‘봉별기’나 ‘날개’와 같은 소설도 이런 사소설류이고, 시대도 비슷하다.-하지만 책이 얇았고, 낮잠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는 나는 한 시간 정도 걸렸을까, 그 책을 다 읽고 말았다. 재능을 감추고, 원죄의식 속에서 퇴폐적 정서와 불안으로 특히, 여자에게 기생寄生하는 삶으로 독자를 힘들게 하는 세 편의 수기로 이루어진 책,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실격人間失格’을. 나는 책을 덮으면서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라는 화자의 말에 고민했다. 정신병원에 갇힌 자신의 처지가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인지, 화자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된 삶을 살아왔다는 뜻인지.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지.


패전 후 황폐하고, 무기력하고,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일본의 문청文靑들은 ‘다자이 오사무’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인간실격’은 그들의 처지와 정신상태를 대변했다. 하지만 ‘금색禁色’ ‘금각사金閣寺’ 같은 탐미적인 소설을 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그에 대한 열광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맨손체조만 좀 했어도 그의 우울증은 치유됐을 것이다.” 아주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도 1960년 발표한 ‘우국憂國’ 이후로 급진적 민족주의자가 됐다. 그는 ‘다자이 오사무’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방법으로 자살했다. 1970년 11월 25일의 일이다.


호텔을 나오니 오토바이의 물결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후 호치민으로 이름이 바뀐 도시는 다시 사이공saigon이 되어가고 있었다.


#뱀다리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20세기 기수旗手, 다자이 오사무. 1948년 6월 13일 애인이었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가가와多摩川에서 투신자살했다. 다섯 번째 자살시도였다. 그의 주검은 도미에와 기모노 끈으로 묶인 채 투신한 지 6일 만에 발견되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고, 향년 39세였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미시마 유키오’는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외치며 자위대 기지 총감실에서 배를 갈라 자살했다. 대단한 우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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