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86.5점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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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평가기준이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 80점 이상이면 괜찮은 커피로 친다. 84점이 넘으면 스페셜티 커피로 판매할만하고, 86점부터는 품질이 좋은 커피라고 여긴다. 88점이 넘으면 그 커피는 약간 비싸게 느껴지더라도 욕심내서 마셔볼 만하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커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90점이 넘는 커피는 그 해 재배된 최상급의 커피로, 평소에 다니던 동네 카페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커피 스코어링의 재밌는 점은 90점에서 몇 점 모자라도 충분히 좋은 커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수우미양가로 치면 '우'인 셈인데, 평소에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면 '우'를 받았다고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의 세계에서는 80점 대면 충분히 좋은 등급이다. 품질을 엄격하게 보는 커피 로스터리에서 다루는 커피들은 보통 84점에서 88점 사이를 오간다. 84점보다 낮으면 품질이 아쉽고, 88점보다 높으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90점 대 이상의 커피는 희소성 때문에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어서 아주 많은 비용을 들여야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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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뭐든 다 잘하고 싶었는데, 90점을 넘기는 일은 노력이 많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조차 버거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대충'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충 해야지, 대충 해야지. 그래야 겨우 시작을 하고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더라. 딱 그 정도 노력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의 대충대충은 강화되어왔다.
내가 알지 못한 건, 그렇게 대충이라도 뭔가를 해치우다 보니 조금씩 늘더라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더 적은 품을 들여도 비슷한 수준의 아웃풋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이 쉬워지니 여유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걸 고려할 수 있게 되어서 가끔씩은 점수가 1-2점씩 높아지기도 했다. 물론 매번 그랬던 건 아니고 그만큼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 노력을 더 기울였을 때의 이야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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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내가 몇 점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지 누군가 평가해줬으면 했다. 오늘은 더 이상 그런 생각 말고 그냥 스스로 목표를 정하기로 하였다. 84점과 88점 사이의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평균으로 치면 86.5점 정도. 왜 86점이 아니냐면 가끔은 88점을 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는 80점에서 84점 사이의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인데, 지금보다는 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대충 할 일은 84점을, 잘하고 싶은 일은 88점을 목표로 하고, 절대 90점 이상을 목표로 삼지 않는 에이티플러스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