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상태의 철봉 위로
턱걸이는 오랜 로망이다. 30대가 된 후로 그다지 잘하고 싶은 게 없는데, 턱걸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린 시절 그대로다. 이유는 여러 가지. 영화 13구역의 주인공이 턱걸이를 잘했다거나, 아는 체대생이 턱걸이가 최고의 운동이라고 했다던가, 하는 이유들도 있지만 사실 광배근을 키워서 덩치가 커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턱걸이는 어려운 운동이었다. 잘못된 자세로 하다가 어깨를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다. 어떻게 개수를 늘려놔도 몇 주 안 하면 한 개도 하기 힘든 몸이 되었고 결국 어느 순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문득 턱걸이를 하고 싶어져서 풀업 바를 알아봤는데, 집안에 설치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철봉이 있는 집 근처 공원에 갔다. 해 보니 역시 하나도 하기 어려웠다. 턱걸이 하나도 못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을 조금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풀업 밴드를 주문했다.
오늘 퇴근했는데, 오기로 한 풀업 밴드가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그냥 공원에 나갔다. 밖에 나오니 땅이 축축했다. 비가 와서 배송이 늦어지는 거겠지. 이런, 철봉이 젖어 있겠구나. 공원까지 천천히 뛰어갔더니 역시 철봉에는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내 전용 철봉이 되어다오.
철봉을 잡고 자세를 잡아본다. 견갑골을 내리고, 배에 힘을 주고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 석양이 정말 멋졌는데, 앞으로는 해 질 녘에 와야겠다.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철봉을 오를 차례. 어제는 하나도 못 하겠더니 오늘은 두 개를 할 수 있었다. 세 개도 억지로 할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다칠 것 같아서 그냥 내려왔다. 자세를 제대로 잡고 하니까 제법 수월했다. 유튜브 선생님들 덕분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왜 턱걸이에 매혹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푸시업을 싫어하는 내가 풀업을 좋아하는 이유. 그것은 풀업은 상승이고 푸시업은 하강이기 때문이다. 철봉을 당기면 나는 하늘에 가까워진다. 너무나 좋아하는 하늘, 그 너머에 있는 우주. 턱걸이는 당기는 힘 말곤 가진 게 없는 내가 우주에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우주에 가기 위해선 내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 잘 단련된 광배근이 철봉 위의 내게 적용되는 중력을 거뜬히 버텨내는 날, 마치 무중력 상태 인양 편안하게 철봉 위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그날, 나도 우주인이 될 것이다. 기다려라, 제프 베이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