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통날

차를 마시며

by 현묵

오늘은 대개 그렇듯 보통의 날이다.

허리가 약간 저릴 만큼 푹 자서 피곤함이 싹 씻기듯 일어났고

아침에 창가를 보면서

해와 차를 즐길 수 있는.

어떤 날은 일어나서 빈속에 차가운 라떼를 벌컥이는데

그런 날은 꼭 배탈이 났다.


나는 어디를 향하는 걸까.

내 마음이 향하고 싶은 건 어딜까.

김광석의 노래가 머릿속을 비집고 나온다.


30대가 되어 나이를 먹으면

어디든 곧게 나아갈 줄 알았는데,

눈 오는 부산을 떠올리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뭐 아무렴 어떤가.

라는 생각을 할 때쯤이면

내 얼굴을 향해 포근한 햇살이

하루를 시작하길 채근한다.


보통의 날이 그렇듯 크게 기쁘거나 우울함이 없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좋은 날보다 훨씬 많을 텐데.


난 보통의 날이 되려 좋아졌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올랐다.

나의 일상을 더듬는 사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과 좋은 것들이 떠올랐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릎이 저려

인상 찡그리며 고통을 호소한 게

그나마 안 좋은 일이었다.

사소한 좋은 것들 몇몇을 더하니

(주로 신기한 모양의 구름을 보거나 귀여운 강아지들을 본 것)

좋은 날로 어느새 하루가 바뀌어감을 느꼈다.


내일은 어떤 날이 될지 모르지만

오늘의 보통날은

슬픈 이별노래 대신

평온하게 이렇게 글을 끄적일 수 있는 좋은 날로 변해 있다.

예전 같으면 내뿜었을 담배 연기 대신에

쌉쌀한 다홍색 루이보스차의 입김을 내뿜었다.

곧 안경에 서린 김이 가운데서부터 물러나더니

나를 선명한 세상으로 데려온다.

내일은 왠지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tea-1284366_19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상, 비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