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과 다리를 뻗는다. 차가운 벽이 손바닥과 발바닥을 쿡 찌른다. 흰 벽에 걸린 엄마가 챙겨준 동그란 시계를 바라본다. 새벽 3시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얇은 벽 사이로 옆 방 남자의 킁킁 거리는 헛기침 소리가 1분에 2~3번씩 들려온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려고 애쓰지만 창 너머 들어오는 달빛마저 눈이 부시다.
'역시 암막커튼을 달았어야 했나?' 후회해도 다는 것은 귀찮다.
머리 위로 팔을 뻗어 MP3를 손에 쥔다. 이어폰을 꽂으니 귀속으로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라는 가사가 들려온다. 달콤하고 포근한 목소리에 위안을 받아 요동치던 불안함이 가라앉는다. 그제야 눈꺼풀이 감긴다.
선잠이 든 머리 위로 비추는 새벽의 빛이 미간 사이 주름을 깊게 만든다. 강의실 자리를 맡아야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비몽사몽 무거운 상체를 일으킨다.
오전 5시 30분. 세 시간도 채 못 잤다. 두 다리도 마저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엄마가 서울의 겨울은 살갗을 후빈다며 택배로 보내준 노란색 오리털 이불이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다시 벌써 일 년을 틀고 이어폰을 켠 채 눈을 감는다. 얕은 잠이 든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진동이 울린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더듬거려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무운~ 아직 안 일어났어? 아침 먹으러 가자고 전화했어."
그녀다. 정리되지 않은 짙은 고동색 눈썹, 몇 년째 길이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눈썹색과 똑같은 머리카락, 립밤을 바르지 않아도 선명한 자홍색 입술을 가진 세상 무해한 여인 U.
바람풍선 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를 나무처럼 지지해 주는 U의 다정함에 몸을 일으킨다.
세탁기에 무작정 돌려서 색이 바랜 핑크색 모자를 눌러쓴 후 식권 한 장을 들고 고시 식당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입구 앞에 서있는 U가 옅은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든다.
"못 잤어? 또 눈이 부었네."
"아니야. 잤어. 조금 설쳐서 그렇지."
그녀의 걱정 어린 음색에 설탕처럼 마음이 녹아내려 눈물이 날 것 같아 어설픈 거짓말을 한다.
단 한 번도 나에게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지 않은 U. 언니같이 등을 토닥여주는 그녀에게 이번만큼은 신림동에 잘 적응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하지만엄마가 가장 잘하는 반찬인 고사리 나물이 메뉴로 나와서 때문인지, 나의 안색을 살피는 U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 때문인지 식판에 담긴 하얀 쌀밥 위로 어김없이 눈물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