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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Nov 29. 2024

갱년기 vs 사춘기

문득 아이가 미워질 때

"안녕하세요."

킥보트를 타고 들어 온 아홉 살쯤 보이는 사내아이의 똘망똘망한 목소리.

"~ 안녕. 이사 왔어?"

"아뇨. 일곱 살 때 이사 왔고 지금은 여덟 살이에요.

곧 아홉 살이 면 에코델타로 이사 갈 거예요."

"그렇구나. 아줌마가 처음 봐서 몰랐네."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는 녀석. 그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린다.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아이. 그 모습이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응~잘 가."


스르륵 미끄럼틀을 타듯 킥보드를 타고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이 아쉽다. 몇 초간 바라보다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 콧잔등이 시큰하다.

툭하면 울어서 아들 녀석이 엄마 갱년기야?라고 구박하지만 이번 눈물은 당황스럽다.


누가 혼을 내지도, 슬픈 영화를 보지도, 극 T의 남편이랑 싸우지도, 사춘기 녀석이랑 실랑이를 벌이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요동치니 정말 갱년기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는 게. 그럼 우울증인가? 그것도 싫다.

 아이처럼 귀엽고 명랑했던 모습이 마술모자처럼 사라진 녀석은 사춘기의 허세와 나를 무시하는 말과 눈빛들로 변신해서 다시 나타났다. 그 낯선 모습이 견디기 힘들 뿐이다.


주변에 는 딸 엄마들은 (몇 명 밖에 없지만) 딸과 데이트하며 옷도 같이 입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한다니 그 모든 것들이 부럽다. 며칠 전 평생학습관 수업을 들으러 갔다. 중 1 아들을 키우고 있다 말하자마자 강사님이 "아유 힘드시겠어요. 중3 지나면 정신 차리니 좀만 더 참으세요." 위로 아닌 위로하셨다. 5학년부터 시작된 사춘기가 아직도 2년이나 더 남았다니 깊은 한숨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이건 마치 선전포고, 앞으로 일어날 폭풍우의 예고편 같다. 신생아 때 100일이 지나면 통잠을 잔다더니 그 후로도 계속 잠을 자지 않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중 3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면 내 마음도 우리 아이도 평화로워질까? 친정 엄마와 남편은 욕심을 내려놓고 내버려 두라는데 내 마음을 욕심과 집착으로 부정당하는 듯하다.


지난 14년간 한 사람에게 집중했던 내 삶이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심정이다. 폭죽이 터지며 반짝였던 밤하늘의 불꽃들이 끝나버렸다.

나는 이제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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