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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Dec 06. 2024

게으른 손

인옥 씨의 손을 쥐면 차디차다. 영하의 날씨 얼음을 깬 강물에 손을 담갔다 뺀 것처럼.


나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어서 두 손을 꽉 쥐고 비빈다. 하지만 락스물을 많이 만져서 갈라지고 벗겨진 손바닥은 가시가 되어서 보드라운 내 살결을 찌른다.


어린 시절 나는 그녀를 보며 혼란스러웠다. 그믐달처럼 웃으면 사라지는 두 눈에 양 옆으로 벌어진 낮은 코, 늘씬하고 가는 다래서 부러질 것 같은 두 다리까지 나와 닮은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 주위에 어른들까지

 "너는 엄마를 하나도 안 닮았네. 아빠 닮았네."라고 말하니 어린 마음에 낳아준 친엄마는 따로 있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드디어 발견했다. 마당에서 키운 봉숭아잎을 빻아서 내 손톱에 얹어주는 그녀의 두 손이 나와 똑 닮아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뾰족해지는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손가락들, 길쭉한 직사각형의 손톱까지 크기만 다를 뿐이었다.

"엄마랑 나랑 손이 똑같네?"

"그걸 이제 알았나? 네가 엄마 닮아서 손이 예쁜 거다."


수십 년이 흘러 다홍빛으로 물든 손톱을 보며 들떴던 꼬마는 아줌마가 됐다. 그녀는 육십 중반을 넘은 할머니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손마저 닮지 않게 되었다. Y의 사업실패로 마흔부터 일을 하게 된 그녀의 손들은 습진으로 벗겨지고 갈라졌다. 무거운 그릇을 많이 들어서 손가락들은 c자형으로 굽어졌다.


손을 어쩌다 잡게 되면 흠칫 놀란다. 거친 수세미를 만지는 느낌이다. 반면 내 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네일숍 원장님의 말처럼 일을 거의 하지 않은 게으른 손이다. 봉숭아 물 대신  화려한 펄매니큐어가 발린 내 손을 보며 인옥 씨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의 손을 안 닮아서 다행이라고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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