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열아홉_스물, 그리고 대학...

by 문리버

1. 교회에서 고3 담임을 맡고 있다 보니 수험생의 스케줄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한 주간은 수시 원서접수 기간..

주일 아침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확실히 다른 주일에 비해 지난 주일에는 표정들이 밝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수시 원서 6개 카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상향-적정-안정-하향’ 지원을 놓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고, 마음의 결정을 끝낸 친구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불안하고 초조하기는 매한가지일 터.


게다가 원서 쓴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

어쩌면 이들의 계절은..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9월도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

부디, 이 아이들이 원하고 바라는 결과가 나오길..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려보길..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2. 학력고사 세대인 나 때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었다.

(나 다음 해까지 학력고사였고, 이후에 수능으로..)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먼저 지원한 뒤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그 결과에 따라 당락이 정해졌는데,

전기, 후기 모두 떨어진 나는 재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마지막 기회였던 전문대 문예창작과에 도전했다.


그때, 친구 두 명도 나와 같은 전문대에 지원했는데 한 명은 방송연예과, 한 명은 광고창작과.

지금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합격자 발표 날의 풍경만큼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정확히는 그날 우리 셋 사이에 머물던 공기가 떠오른달까.


동네에서 만난 우리 셋은 당시 68번 좌석버스를 타고 회차 지점인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하차,

명동 길을 한참 걷고 또 걸어서 남산 자락에 있는 학교까지 열심히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우리 셋은 ‘아우 떨린다. 떨려.’ 이 말만 반복한 것 같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너무나도 궁금하고 초조했으니까.

그래도 시험을 잘 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두 친구는, 나보다는 안정된 느낌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난, 전문대도 떨어지면 어디에 취직해야 하나? 어떻게 돈 벌어야 하나? 이 고민으로 가득했다.)


여하튼, 가쁜 숨을 고르며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과별로 붙어 있는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는데,

결과는.. 나는 합격, 두 친구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기쁘고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두 친구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축하인사를 받으며 다시 학교에서부터 왔던 길 그대로 명동 길을 거슬러 내려오는데,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 셋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침묵이 최선이었던 사람들처럼.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준 친구들..

합격 소식 앞에서 벅찬 감정을 잠시 누르며, 친구들을 위로해 준 나..


그 해 봄, 학교에 입학한 후.. 혼자서 그 길을 오갈 때면 한동안 생각이 나곤 했다.

표현도, 감당도 어렵던 여러 감정을 품고 명동 길을 걸었던

열아홉 끝자락에서 스물 초반의 우리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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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줄 :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미지의 서울' 대사 중)

- 열아홉의 시간과 계절을 응원합니다. -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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