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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비 May 06. 2021

소통의 부재

<모노노케 히메>


모든 고통은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주말에 영화 <모노노케 히메>를 관람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원령공주>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인간들은 숲에 사는 신들을 몰아내고, 자연을 파괴해가며 보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합니다. 숲의 신들은 그러한 인간들의 만행에 분노하게 됩니다. 증오와 원망을 품은 숲의 신들은 재앙 신이 되어 인간을 공격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서로 대화가 가능함에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아시타가는 두 공동체 사이를 오가면서 공존할 것을 설득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분노와 욕심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습니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습니다. 소통 대신 많은 죽음을 초래하는 전쟁을 선택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모든 고통은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소통의 부재는 왜 생긴 걸까? 존재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 때문이 아닐까? 또한 사랑의 반대는 소통하지 않음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소통의 부재 - 증오와 원망


숲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분노와 증오를 품은 멧돼지 신은 재앙 신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렇게 재앙 신이 된 멧돼지 신을 보면서, 그런 멧돼지 신을 죽이려는 마을의 족장 에보시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소통의 부재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재앙 신이 된 멧돼지 신이면서, 그 멧돼지 신을 죽이려는 족장 에보시였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와의 소통이 거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자식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고, 자식에게 그다지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무뚝뚝한 성향의 엄마와는 대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춘기 때 모든 고민들을 나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필요할 때 내 옆에 있어주지도,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도움을 주지도 못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경험 정보로 인하여 '이 세상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그것이 현실인 걸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나의 사고방식은 사회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회 또한 내가 어떤 요구를 하였을 때, 냉담하게 반응할뿐더러, 상황만 악화되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 더 입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며 자랐기에,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해 줄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완벽하지 못한 나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재앙 신이 된 것과 동시에 그 재앙 신을 공격하는 족장 에보시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겉으로는 그런 어두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내 안에 꼭꼭 숨기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증오와 분노가 짙어졌습니다. 그 분노의 화살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향한 채 말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슬픔과 우울증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지구별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전부 대화가 부족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서 상대방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 또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믿고 있는 일, 자신의 내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전부 표현한다면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 싸움을 걸 사람은 없습니다. 대화 부족에서 오는 오해가 싸움을 만들어 냅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p64




먼저 나 자신과 소통하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먼저 나 자신과 소통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해 주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내면으로 들어가 상처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나의 부모도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자식에게 그렇게 한 것이겠죠? 지난 과거를 돌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원망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요. 마음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내 안에 분노의 재앙 신이 잠잠해졌습니다. 아직은 두렵습니다. 또 이해받지 못하고 버림 당할까 봐.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어 변화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내 안의 힘을 되찾고 있습니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과 개개인의 재앙들은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그 신성한 자연의 신이 재앙 신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에 고통을 주는 수많은 악인들이, 그들이 세상에 악을 뿌리는 악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얼마나 많은 소통의 부재를 겪었을까?라는 생각해봅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우선 나 자신과 소통해 보기를 권합니다. 세상이 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도 좋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소통함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자연히 세상과 소통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되겠지요. 세상을 원망하는 것으로 세상에 힘을 주지 말고, 내 안으로 힘을 가져와야 합니다. 자신과 소통함으로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과 소통함으로 세상과 소통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소통의 부재 #증오와 원망 #모노노케 히메 #원령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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