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모순성의 색, 노랑
당신은 ‘노랑’ 하면 가장 먼저 반 고흐를 떠 올릴 것이다. 반 고흐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최소한 순수한 노란색을 포함한 그림을 최소한 638개 그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반 고흐가 정말 노란색을 좋아해서 즐겨 사용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의구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듯 고흐는 37년의 짧은 인생 동안 우울, 중독, 정신질환으로 비참한 삶을 보내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였다. 고흐는 양극성 장애로 진단받았고 심각한 간질 발작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우리는 그의 정신질환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그를 치료한 사람들의 증상과 진단에 관한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흐가 노란색 물감을 많이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술(압생트)과 관련된 황시증에 의한 증거라고 보는 주장과 정신질환으로 인해 병원에 있는 동안 치료약으로 쓰였던 디지털리스에 의한 증상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먼저 고흐가 즐겨 마셨던 압생트(L'Absinthe)라는 술을 설명해 보자면, 압생트는 1차 세계 대전 이전 반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프랑스의 술이었다. 알코올 농도가 30%-70%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독한 술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술은 초록빛을 띠며, 에탄올과 쑥, 물을 섞어 증류하여 만든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압생트는 가격이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중독성이 강해 국민적 술이 될 만큼 크게 유행했다. 사실, 마네, 드가, 툴루즈-로트렉, 오르펜, 피카소는 모두 "압생트 마시는 사람(The Absinthe Drinker)"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나 스케치를 제작했고, 외에도 많은 화가가 "압생트"라는 제목의 작품을 그렸다. 조울증, 발작, 폭력, 환각, 실명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된 압생트는 대중들 사이에서 놀랍게도 ‘초록색 요정’으로 불리며 신화적으로 인식되었고, 결국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생산 금지가 되었다.
반 고흐의 발작과 환각 증상의 대부분은 압생트를 마신 직후에 나타났다고 전해지며, 가장 큰 사건은 반 고흐가 금주를 포기한 후 압생트를 마구 마시다가 흥분된 상태에서 귀를 잘랐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고흐가 압생트를 많이 마셨기 때문에 황시증(黃視症 Xanthopia)이 생겼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황시증은 사물이 노랗게 황색으로 변해 보이게 하는 신경-안구 병리증상이다. 압생트에는 테르펜(terpene)으로 알려진 경련 유발 화합물 성분이 있었으며, 실제로 고흐는 납성분이 들어 있는 물감과 함께 테레빈유를 자주 마시고는 했다.
반 고흐의 시각에 관한 정확한 진단 기록은 없으나, 시력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보고는 있다. 1889년 생레미(Saint Rémy de Provence)에 있는 생폴 정신병원(Saint-Paul Asylum)에 입원한 후 그의 주치의인 폴 페르디낭 가셰(Paul-Ferdinand Gachet) 박사가 디지털리스(Digitalis, 다년생 식물, 일반적으로 foxglobe라 불림)를 처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것이 의학적으로 고흐가 황시증을 앓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디지털리스에서 추출된 디곡신(digoxin) 성분은 중등도 심부전 치료에 사용되며, 디곡신의 표적 효소의 농도가 높은 것은 눈의 망막에 있는 원뿔 세포에서 발견된다. 이 세포는 우리에게 색각 이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디곡신과 관련 약물을 복용하는 일부 사람들은 시야가 흐릿해지거나, 때때로 빛 주변에 후광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된 상황적 증거는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담당 의사였던 폴 가셰 박사를 그린 두 개의 초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점의 초상화에서 가셰박사는 모두 디지털리스 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가셰 박사의 초상화는 반 고흐가 자살하기 불과 6주 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설도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그가 받았던 스트레스나 발작으로 인한 뇌손상이 그를 변화시키고 색각이상을 만드는 매우 복잡한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종종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는 한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화가의 신체적 환경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는 화가가 우리에게 공유하려고 했던 현실에서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반 고흐의 작품은 불안을 포함한 자신의 감정적 갈등을 반영하고 있고, 이러한 강렬한 감정은 보이는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황시증을 앓았던 그렇지 않았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