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모순성의 색, 노랑
노랑은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에서 가장 밝은 색이며 아름답고 예쁜 꽃들, 상큼한 레몬, 따뜻한 햇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노랑은 인기가 없다. 심지어 색채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지 않는 색 2위를 차지했을 정도인데, 우리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 이러한 결과는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맑은 어린이들을 태우는 유치원, 학원 차량이 모두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잠시 이 노란 차량의 기원을 살펴보면, 1939년 미국에서 프랭크 W. 시르 박사가 최초의 '학교 교통 회의'를 조직하고, 스쿨버스의 색을 노랑으로 정한 것이 그 시초라 볼 수 있다. 이후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색으로 노랑을 지정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1월 29일부터 ‘어린이 통학버스’로 용어를 일원화했으며, 반드시 노란색으로 전면을 도색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서양의 스쿨버스도 노란색인데 왜 그들은 노랑을 선호하지 않는 걸까?
고대 그리스에서 노란색 옷은 보통 여성에게만 허용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란색 옷을 입은 남자는 사회 질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소외된 인간으로 여겨졌다. 중세 후기부터 근대 초까지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집은 노란색으로 칠해졌다고 하니, 이보다 더 심한 낙인이 또 있을까 싶다. 15세기 체코의 신학자 얀 후스(Jan Hus)가 이단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노란색 옷을 입고 화형대에 끌려갔다.
유럽의 역사에서 수 세기 동안 노랑은 ‘이단자’ 또는 ‘신뢰할 수 없는 자’라는 인식이 흔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Giotto가 그린 유다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노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다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온 대제사장에게 그를 식별할 수 있도록 일부러 다가가 입맞춤을 하는 행위로, 유다는 유일하게 예수를 배반한 제자였다. 그림 속에서 유다가 입은 옷의 색을 보면 노랑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확연해질 것이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노랑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구별하는 색이었는데, 노란색 신분증을 발급받은 매춘부, 외벽이 전부 노랑으로 칠해진 유럽의 요양소에서부터 나치 정부가 유럽을 장악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을 식별할 수 있는 ‘다윗의 별’까지 부정적 낙인은 거의 노란색이었다. 특히 다윗의 별은 ‘옐로 베지(yellow badge)’란 이름으로 불리고는 했는데 반유대주의자와 외국인 혐오증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색이었다. 이렇게 서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문화적 배경이 색의 선호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임상 현장에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매우 놀랐던 경험이 있다. 경기도에 소재한 가족센터에서 다문화부부를 위한 집단 미술치료가 있었고, 나는 치료사로서 의뢰를 받았었다. 모두 8쌍의 부부가 참여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색채에 관한 어떠한 강의도 하지 않았고 선입견도 주지 않았다. 한국남편을 믿고 타국으로 시집을 온 외국여성과 한국인 남편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여성들의 한국어 실력은 대부분 초보 수준이어서 남편의 도움으로 작업을 했고, 한국말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아직 글로 쓰는 것에는 서툰 아내들도 있었다. 사실상 미술치료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굳이 언어로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 없이 그들과 치료사 사이에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날의 집단 미술치료는 이런 면에서 빛을 발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관한 중요성, 감정의 뿌리와 종류 등을 간단히 설명하고 미리 준비해 간 하트모양의 도화지에 각자가 최근에 느끼는 감정들을 색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을 마친 후 나눔의 시간을 가졌는데 아래 제시한 4명의 아내들의 그림을 노랑에 대한 문화적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그림을 그린 2명의 여성은 미국인, 1명은 멕시코인, 1명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의 감정 하트에서 노랑이 의미하는 것은 화남, 긴장, 두려움, 부끄러움이었다. 놀랍게도 한국인 남편들의 감정하트에서는 노란색이 드물기도 했지만, 노랑을 첨가한 경우는 모두 긍정적인 감정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황제가 입던 의복은 금빛의 노랑이었고, 이는 오방색에서 중앙을 뜻하는 ”중심적 존재‘임을 나타낸다. 중국 속담에서 "노란색은 음과 양을 낳는다"는 말이 있듯, 노랑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색채선호도 조사를 보면 노란색은 3위 안에 들만큼 그 인기가 높다. 물론 한국인 중에도 노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내담자의 그림을 제시하면서 1:1 해석울 하고자 함은 아니며, 누구에게나 색은 주관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렸을 때 특정색을 연상하는 것에는 어떠한 정답도 없음을 말하고 싶다. 다만, 나는 그날 국적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성인의 색채감정 중에서 노란색으로 표현된 공통적인 부정성에 놀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