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색, 파랑
인류는 파랑을 참 좋아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S디자인 회사에서 150개국 6,300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을 포함한 유럽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은 ‘Blue(파랑)’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케팅 분야에서 색채를 연구하는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교수 Lauren I. Labrecque의 대다수 논문에서도 피검자의 색상 선호도에서 1등의 자리는 늘 파랑이라는 결과를 볼 수 있다. 또한 1993년 크레용 제조사인 크레욜라(Crayola)는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크레용 색깔을 조사했는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파란색을 선택했고, 푸른 계열의 남색과 하늘색 역시 상위 10위 안에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7년 후, 이 회사는 같은 조사를 반복했으나 클래식한 파란색이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의 색상 선호도는 어떨까?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찾아보면 아래의 도표에 제시한 바와 같이 한국인 역시 가장 선호하는 색은 파랑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색상 선호도를 조사한 데이터는 무수히 많은데 한결같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색은 파랑이다. 그렇기에 루이스 부르주아, 이브 클라인, 바실리 칸딘스키 등 유명 화가들이 파란색을 선호한다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독자분들 중에는 다른 색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파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버클리대학의 교수 팔머(stephen E. Palmer)와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부교수 슐로스(Karen B. Schloss)가 지난 7년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주어진 색상에 대한 선호도는 한 사람이 어떤 색과 연관시키는 모든 사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평균하여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초록색에 대한 선호도는 식물이나 미국 달러 지폐에 관한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정적인 파란색을 생각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굳이 푸른곰팡이를 떠올릴 수 있으나 실제로 푸른곰팡이는 파랑보다는 초록에 가깝다. 대신 어느 지역에서 거주하더라도 맑고 화창한 하늘과 깨끗한 물은 보편적으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문화적 차이,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다른 차원에서 파란색의 선호도를 추론해 볼 수 있는데, 파랑은 여러 종교에서 신성시된다는 점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파란색은 천사, 천국, 성모 마리아의 옷처럼 성스러움과 연관된다. 힌두교에서 최고 신성의 삼위일체인 트리무르티(Trimurti)는 창조, 보존, 파괴의 우주적 기능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 삼위일체 중 가운데 비슈누는 파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아바타로 숭배되는 크리슈나(Krishna)는 보호, 연민, 부드러움, 사랑의 신인데 그 자체로 최고신으로 숭배된다. 이 크리슈나 역시 파란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힌두교에서 파랑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색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는 별개이지만 흥미로운 점으로,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에서는 파란색 대문과 창문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그리고 기독교와 토착 종교 사이의 과도기에서 싹튼 일종의 미신으로 파란색이 악마와 나쁜 에너지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파랑이 이렇게 긍정적이고 순수하며 고귀한 색이라면, 왜 우리는 기분이 우울할 때 ‘blue’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 영화『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슬픔이는 파랑이고, 외모는 눈물방울 모양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러분이 blue라는 단어를 모를 리 없겠지만 영어 사전을 보면 당황할 수도 있다. Dictionary of Americanisms에 따르면, Blue는 우울한, 심각한, 극단적인 것을 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COVID-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었을 때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것은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을 합한 단어로,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증을 뜻한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blues)라는 음악 장르도 1860년대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음악 형태인데, 그 가사와 멜로디가 우울하고 슬프게 들려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파랑이 우울함과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유래를 밝히고자 많은 문헌을 조사해 보았으나, 명확한 시작은 찾기 어려웠다. 다만 여러 문헌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를 소개해 보면, 우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그의 서사시 『화성의 불만(The Complaint of Mars)』에서 마르스와 여신 비너스 사이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묘사했다. 이 시에서 그는 ‘blewe’를 사용했는데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Wyth teres blewe and with a wounded herte'
이 문장은 현대 영어로 ‘With tears of blue and with a wounded heart(파란 눈물과 상처받은 마음으로)’로 번역될 수 있는데 시인에게 파랑은 눈물의 형용사로 가장 적절했던 것 같다. 제프리 초서의 시는 파랑을 슬픔과 연결한 최초의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문학적 묘사는 18세기에 조지 콜먼(George Colman)의 희곡 『블루 데블스(Blue Devils), 1798』에서도 다시금 발견된다. 블루 데블스는 1막으로 구성된 짧은 희곡으로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여성과 사랑에 빠진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다양한 장애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콜먼의 재치 있는 대사와 기발한 줄거리 전개로 인해 이 연극은 18세기 런던의 사회적 관습에 대한 유머와 통찰력을 모두 보여준 영국 연극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희곡의 제목에서 데블스는 빠지고 ‘블루’만 남아 불안이나 우울증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문헌에서 색과 감정을 연결한 것은 단어의 쓰임새에 관한 기원으로만 여겼을 뿐 그것을 쉽게 인정할 리 없었다. 인간의 색채 감각을 뒷받침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은 거의 1세기 동안 연구 되어왔고, 과학자들은 색채 중에서도 극적으로 다른 빨강과 파랑이 주는 영향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 연구들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의 인지 기능 향상에 관한 비교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심장박동수의 변화, 코티졸의 변화를 체크하여 색채와 조명이 신체에 직접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밝혀내기 시작했다.
파랑은 우리의 심장박동수를 낮춰주어 안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확실하나, 장시간 파랑에 노출될 경우, 평온이 지나쳐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나는 임상 현장에서 만난 내담자와 수강생들의 그림에서 파랑은 단순히 슬픔인가 아니면 평온함인가로 구별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색이 가지고 있는 명도와 채도를 먼저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명도가 높은 색은 그것이 파랑이 되었건 빨강이 되었건 내담자에게 긍정적인 표현의 방식임을 자주 본다.
파랑은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내담자들은 강력하고 의미 있는 색상을 표현한다. 이것은 치료사에게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기에 색과 감정 사이의 연관성을 더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파랑-blue가 여러분께는 어떤 감정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