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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0. 소녀들(2)

나비펜션이라고 해서 정말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이 피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 적은 없다. 반 친구들 절반 이상은 꿈속으로 떠난 수학 시간, 주원이 열 손가락을 달달 떨어가며 단체채팅방에 남겨놓은 그 글자를 보자마자 이서는 기세 좋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에 나무늘보처럼 느릿하게 칠판에 수식을 적어나가던 수학선생은 화들짝 놀란듯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서는 재채기가 난 척 코끝을 있는 힘껏 손으로 비비며, 옆자리 세미에게 나지막히, '이름 개 촌스럽다. 펜션 이름이 그게 뭐야.' 하고 읊었다. 세미는 숨을 죽인 채 어깨를 한껏 올려 눈웃음을 짓는 것으로 그녀의 말에 화답했다. 교실 맨 뒷자리에 앉은 지영은 단체채팅방에 '뭐라는거야.' 다섯 글자를 치다말고, 인터넷을 켜 검색창에 ' 나비펜션'을 입력해보았다. '나비야펜션', '나비잠펜션' 등 나비가 들어간 전국 팔도 펜션들이 화려한 꽃무늬 벽지의 방 사진을 앞세우며 줄줄이 나왔지만, 개중에서 주원이 말한 그곳은 없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마주한 나비펜션의 방은 나비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좁았다. 노란 땟국물이 꼽질꼽질 끼어있는 오래된 벽지를 보고있자니, 지영은 오히려 꽃무늬 벽지가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깐동안 했다. 꼭 쥐나 벌레, 혹은 사람이 오줌을 여기저기 갈겨놓은듯한 얼룩이었다. 그에 걸맞게 방안에서는 은은한 지린내같은 것이 이따금씩 코를 강타했다. 지영은 괜히 팔에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서와 세미는 방 바닥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은 채로, 미간을 잔뜩 찡그리곤 휴대폰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주원은 '춥다.'고 중얼거리며 방 구석에 버려진 듯 놓인 침대 위 이불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주원이 이불을 끌고와 이서옆에 앉자, 이서는 몸에 닿으면 안될 것이라도 닿은듯 손사래를 치며 이불보를 주원 쪽으로 밀쳐냈다. 주원은 그런 이서의 손길에 놀란 토끼눈을 했지만, 이내 어쩔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엉덩이를 들썩해 이불을 자신의 무릎위에 조심히 포개두었다. 


 


"여기서 잔다고? 하루를?" 


이서는 결국 못참겠다는 듯 짜증을 내었다.  


 


"여기 이상해. 주인아저씨도 너무 무섭고." 


세미도 한마디 거들었다. 곱슬곱슬한 수염이 턱에 수북한 사장의 얼굴이 방 중앙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사장은 꼬깃한 현금을 쥐고 손을 떠는 주원을, 누렇게뜬 눈으로 한두번 훑었다. 뒤에 멀찍이 서서 딴청을 피우는 지영, 이서, 세미도 차례로 훑어보았다. 느릿하게- '거, 학생인 것 같은데, 삼만원만 줘.' 하고 주원의 손에서 꼼지락대는 만원짜리 돈들을 거칠게 뺐어가면서도 시선은 한동안 세미에 머물렀는데, 세미는 그의 눈빛이 꼭 어릴때 친구들이랑 종종하던 공포게임의 마지막 빌런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장이 툭 던져놓은 방 열쇠에서는 찌든 담배냄새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차마 다부지게 쥐지 못하고 손가락 끝으로 열쇠를 집는 주원을, 세미는 짐짓 결연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지영은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주원이 예의 말한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12시. 지영은 아직도 투레질을 하고있는 이서를 지나쳐,주원 옆에 앉으며 말했다. 


 


"12시 다 되가." 


 


"우리,둥글게 앉아야해." 


주원은 번뜩 정신이 든 듯, 이불을 네모반듯하게 접어 방 한가운데로 늏고, 각 모서리마다 한명씩 앉으라고 지시했다. 이서는 '이게- 되겠어.' 하고 툴툴거리며, 주원의 오른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세미는 그런 이서의 소매끝을 붙잡고 있다가, 이서가 일어나자 따라 일어나 이서의 오른쪽 모서리에 군말없이 앉았다. 지영은 남은 한 쪽 모서리, 침대를 등지고 앉아 조용히 맞은편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15살 소녀들에게는 꼭 억겁처럼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이제 자면 돼."  


주원은 웃음기를 머금은채 새까매진 발을 이불속으로 파묻었다. 꼭 수련회라도 와서 밤 중에 교관 몰래 무서운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던 때 같았다. 


 


"무서워."  


세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학기초, 영어시간에 지문 낭독을 시키자 염소처럼 파들거리던 예의 그 목소리였다. 이서가 참지못하고 푸흡-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야, 무섭긴 뭐가 무섭냐."  


이서는 짐짓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등 뒤쪽 방바닥을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팔베게를 하고 누웠다. 눈 앞에 펼쳐진 조촐한 장관을 외면하고 싶다는 듯 눈을 꼭 감은 채였다.  


 


 "난 여기서 쥐라도 나올까봐 무섭다." 


 이서는 눈을 여전히 꼭 감은채로,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주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진짜 그냥 자기만 하면 되는거지? 뭐 주문을 외거나, 분신사바를 하거나, 물 떠놓고 기도해야한다거나 그런거 없댔지?" 


 


주원은 자신이 없다는듯 개미만한 목소리로 "응" 하고 대꾸했다. 학교에서 일명 '오컬트 덕후'로 알려진 현우가 알려준 정보였다. 늘 자신이 우월한 정보를 쥐고 있는 것처럼 으시대던 그지만, 주원은 그가 거짓된 정보를 흘리지는 않았을거라 확신했다. 나비펜션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몇번이나 그에게 게임머니를 결제해주었는지 모른다. 주원은 게임머니로 바꿀 수 있는 상품권 코드를 알려줄 때마다 이죽거리던 현우의 얼굴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니, 맞을거다. 이곳에서 잠에만 들면 우리는 버튼을 본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을. 


 


현우말로는 그 버튼이 파랗다했다. 주원은 입속말로 '파란버튼'하고 중얼거렸다. 이서는 그새 잠이라도 든건지 숨소리가 쌕쌕거렸다. 세미는 아직도 몸을 잔뜩 움츠린채 지영의 손을 꼭 잡고 앉아있었다. 지영은 그런 세미의 손을 살포시 놓은채, 침대 턱에 등을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지영, 잘거야?" 


세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흰 손목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시계에서는 새벽2시를 알리는 숫자가 요란히 반짝였다. 그러고보니, 이 곳은 그 흔한 벽시계조차 없다. 오롯이 세미의 손목만이 그녀들의 시각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자야지. 우리 자러왔잖아?" 


지영은 눈을 뜨지 않은채로 옅은 미소를 띄웠다.  


 


"내일 봐."  


지영의 미소는 늘 독특했다. 지영은 웃을 때면 입꼬리를 한껏 올리는 대신, 늘 가로로 길게 늘어뜨렸다. 가끔은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미는 지영의 그 미소야말로 오늘과 같은 상황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세미는 지영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거린 뒤, 맞은편 주원을 건너보았다. 주원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꽃무늬 이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꼭 지옥불에서 악착같이 피어난 것 같은 그 꽃을, 주원은 끊임없이 응시했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세미는 그런 주원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그 지옥불 속으로 금방이라도 주원이 빨려들어가지 않을까, 세미는 생각했다.  


 


"주원아."  


세미의 나지막한 부름에 퍼뜩 정신이 든 듯, 주원이 이불에서 눈을 떼고 세미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듯 눈이 벌겋게 충혈되있었다. 실핏줄이 도도독 터진 주원의 눈은 어쩐지 세미를 향해 흐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내일, 꼭 다 말해주기야! 꿈에서 봤든, 못봤든, 무조건 다 말해주기." 


세미는 주원을 향해 다짐을 받듯 속삭였다. 주인을 잃고 산속에 버려진 염소처럼 세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 알겠어. 난 이만 잘래." 


주원은 세미를 옆눈으로 흘기며 생각했다. 세미는 어째서, 왜 이곳에 오고 싶다고 했을까. 왜 죽고 싶다고 했을까. 저렇게 겁이많으면서.  


 


 


그렇게 네 소녀는, 지옥불을 향해 모로 누워 잠에 들었다. 파란 버튼이 있는 곳이 바다일지, 천국일지 기대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새벽이었다.  


 


 


*** 


 


 


무거운 공기를 도려내는 듯한 진동소리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세미의 손목에서, 주원이 바닥에 던져놓은 핸드폰에서, 날카롭게 7이라는 숫자를 띄우며 이제 일어나라는 신호가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세미는 가장 먼저 일어나며 신경질적으로 손목 시계를 집어 던졌다. 엄마가 학교에 가라며 흔들어 깨울 시간이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왜 알람은 울리는 거람. 세미는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르며 기지개를 켰다.  


 


세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원의 핸드폰은 아직도 정신없이 울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알람이 아닌, '할아버지'라고 써진 글자가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진동소리가 꼭 '전화 좀 받아라'는 불호령 같기도 했다.  


 


"주원아, 일어나. 할아버지 전화 오셨어." 


 


세미는 주원의 할아버지를 딱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아흔줄이 다 되가는 연세에도 화산같은 호통을 치는 정정한 노인이었으나, 주원은 왜인지 할아버지의 눈을 항상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꼭 이 세상을 이미 떠나버린 사람의 눈 같다고 했다. 어쩌면 어제 충혈된 주원의 눈이 꼭 할아버지의 눈과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세미는 생각했다.  


 


주원이 전화를 받자마자 진동소리보다 큰 호통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이년아, 어디서 뭐하는거야!" 


 


주원은 친구들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친구 집에서 잤어요, 금방 들어갈게요."  


 


주원이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집어던지자, 일순 네 명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서도  어느새 잠에서 깨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고, 지영은 입술을 앙 다문채로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다들 어땠어?" 


지영은 짧은 머리를 한움큼 올려 묶으며, 모두가 궁금해했던 질문을 바닥에 꺼내놓았다.   


 


주원은 이마를 문지르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서는 그런 주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어제는 손사래를 치며 걷어냈었던 이불을 조용히 끌어당겨 발등 위에 살포시 덮었다. 잠이 덜 깬 듯 무릎에 얼굴을 파묻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원을 쳐다보기를 몇번 반복했다. 이서는 나비펜션에 오지 말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주원도, 세미도 마찬가지였다.  


 


"나,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어." 


주원은 빨개지도록 이마를 문지르던 손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세미의 귀에는 그 말이 울음섞인 한탄처럼 들렸다. 주원이 할아버지를 얼마나 끔찍하게 싫어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버튼을 누르랬어. 넌 죽어도 싸다고, 당장 죽어서 니 애미 옆으로 사라져버리라 했어." 


알람이 울리던 핸드폰처럼 주원의 어깨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주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바닥 밑으로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한데 모여 똑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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