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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n 30. 2017

수준 높은 커뮤니케이션의 비결

비유를 잘하면 '힐링'이 온다.

언젠가 혈관에 끼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건강 기능 식품을 판매할 때였다. 쿠바에서 만든 이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특허를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건강 기능 식품 등급이 1등급일 정도로 탁월한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방송으로 제품을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이 1등급이 아주 훌륭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 있는 수 백 개의 건강 기능식품 중에서 1등급을 받은 건강 기능 식품은 딱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TV홈쇼핑 방송에서도 엄격한 심의 때문에 등급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수위가 다르다. 2등급일 경우 “~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1등급은 “~에 도움을 받는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등급이 없는 상품은 도움은커녕 아예 기능에 대해말도 꺼낼 수 없다.  TV홈쇼핑에서 건강 관련 상품 방송을 자세히 들어 보면 쇼호스트들이 기능을 표현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수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품은 1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혈관 내 콜레스테롤 제거에 도움을 받습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으니 엄청난 설득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더군다나 우린 모두 다  ‘1’이라는 숫자를 보거나 들으면 일단 주목을 하고 본다. 

 그런데 정작 방송에서 “이 제품은 1등급이어서 방송에서 콜레스테롤 제거에 도움을 받습니다!”라고 말해도 시청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청자는 건강 기능식품에 등급이 있는 것도 알 수도 없을뿐더러, 등급에 따른 표현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더더욱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걸 방송에서 상품 설명을 제쳐 두고 처음부터 설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월등한 기능이 있는데 이걸 살리지 못하니 답답한 건 물론이고 쇼호스트 입장에서는 창피한 일이기도 했다.  

 평소 생활에서도 이런 상황은 많다. 분명히 다른데, 뭔가 확실히 다른데 설명해 줘도 모르는 상황. 붙잡아 놓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면 가능하겠지만 바쁜 세상에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난제를 풀 수 있는 방법. 잔뜩 안개가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오리무중의 상황을 한 방에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시 앞서 얘기한 방송으로 돌아가서, 이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잊고 있다가, 다시 고민하다가 포기하다가를 반복하던 중, 휴대폰으로 대출 안내 스팸 문자가 왔다. ‘고객님이 지금 전화하시면 백 만원 즉시 대출 가능’ 이 문자를 보자마자 번뜩이며 하나가 생각났다. 그래서 방송 때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쉽게 얘기하면 이겁니다. 내가 급전이 몹시 급합니다.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을 때 친구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너에게 돈을 빌려 줄 수 있어.” 이건 뭐지요? 주겠다는 건지 안 준다는 건지 모르잖아요. 이게 2등급이에요. 그런데 “내가 돈을 빌려줄 게.”라고 하면 주겠다는 거잖아요? 이게 바로 1등급이에요. 혈관을 막는 콜레스테롤 무조건 없애야죠. 확실히 도움을 받으세요. 2등급보다는 1등급이 확실하잖아요! 돈 빌릴 때처럼요.”

 이 말에 제일 격하게 반긴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었다. 바로 이 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사 직원들과 대표였다. 본인들도 다른 곳에서 상품 설명할 때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었는데 내가 한 방에 풀어줬다며 방송이 끝나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서 설명하라. 비유의 한 방법이다. 앞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돈 얘기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이걸 응용해서 등급의 차이를 얘기했더니 바로 알아듣는 것이다.

 박현욱 의장 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이렇게 공통 관심사를 이용한 빛나는 비유의 예가 있다. 

 축구, 특히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호감을 느끼고 사귀게 된 커플. 남자는 자유연애를 꿈꾸는 여자를 처음엔 싫어했지만 한 번 빠진 사랑에 정신을 못 차리고 프러포즈를 하고 만다. 하지만 여자는 절대로 결혼은 없다고 단칼에 자르고 수도 없이 거절한다. 그때 남자는 어떻게 설득을 해서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내내 잘 맞기만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만나면서 맞추어 나가는 것 아니겠어?”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덕훈 씨는 그냥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못 잊겠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의 영혼이 나를 원망하고 나의 심장이 나를 탓하는데 무슨 도리가 있어야 말이지.

“플라티니가 그랬지. 축구는 미스(miss)의 스포츠라고. 모든 선수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면 스코어는 영원히 0대 0이라고. 연애 도마찬 가지로 미스의 게임 아니겠어? 모든 연인이 서로에게 완벽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내내 좋은 때 밖에 없다는 건 곧 내내 나쁜 때밖에 없는 것하고 다를 바 없잖아. 굴곡도 있어야 뭐가 좋은 건지도 알고 뭐가 나쁜 건지도 알게 되는 거잖아. 인아 씨가 원하는 그런 애인이 되어주지 못한 건 미안해. 근데 상대방에게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더 알아가는 거잖아.”

플라티니가 도와준 것일까. 그녀가 웃었다.  “하여튼, 참. 거기서 플라티니가 왜 나와?” 

왜 나오긴? 두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얘기이고, 두 사람을 엮어준 재료가 축구인데, 무슨 얘기를 하든 귀가 쫑긋 하게 만들 수 있는 소재는 무조건 축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관계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플라티니의 말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로 머리를 환하게 밝게 해주는 통렬함이 있지 않은가? 나아갈 길 없이 복잡하고 꽉 가로막혔던 대화가, 심각함을 넘어서 자칫 잘못하면 폭발 일보 직전까지 갈 듯하던 대화가 급 반전을 이루면서 두 사람의 끝없는 갈등 상황이 종료됐다. 비유 한 방으로. 

 이제는 연예계에서 ‘-느님’의 칭호를 받는 한 개그맨도 지독한 무명 시절 당시 잘 나가던 선배의 비유 한 마디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00야, 새벽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 언제인지 아니? 바로 제일 캄캄할 때야. 네가 지금 바로그 때인 것 같다.” 갈등이 한순간에 해결되고, 답답했던 현실, 미래가 순식간에 달리 보이는 힘. 그 엄청난 에너지가 사람의 말속에, 더 구체적으로 비유 속에 있다. 특히 책 속에 엄청난 소재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수준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삶의 수준도 당연히 올라가고 그 어렵다는 ‘힐링’이, 그까이 것 ‘힐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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