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단비가 되어주었으면 했던 꿈
예전부터 ‘나중에 이건 꼭 해야지’ 목록이 있었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도 모를적,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정말 꼭 하고 싶던 일.
공부할 여유가 없는 아이에게 도움주는 것이다.
어릴적 피아노를 배웠다.
학교와 집이 너무 멀어 피아노학원에 다니면 학원에서 등하교를 시켜줬다.
피아노를 적당히 좋아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어느새 내 꿈은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전국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하필 끝을 세번이나 틀려 은상을 받았다며 다음대회에 더 박차를 가하고자 했지만 우린 이사를 갔고, 대회에 나가는 것은 무산되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대신, 전교 합창대회에서 학급대표로 피아노를 맡았고 양희은 노래를 반주했다.
피아노를 업으로 삼는 것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야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예고를 목표로 잠시 학원에 다녔지만 공부가 앞길을 열어줄거라 생각해 곧 그만두었다.
학창시절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잠시 다니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잠시 수학과외를 받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내가 유독 성인이 되어서도 독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괜히 부담주기 싫었던 학창시절과 연관이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대학교에 들어갔고, 20대가 되어서도 2년동안의 자유를 끝으로 다시 독학세계에 빠져들었다. 학원을 다니면 점수가 오른다는 토익도 혼자 공부했고, 영어회화도 그랬다. 물론 온라인강의는 들었다.
아빠는 나보다 더했다.
두뇌는 명석한데 학창시절 학비가 없어 책가방도 뺏기고 점심도 밥대신 수돗물만 마셨다고 한다.
통학버스에서 떨어져 발에서 피가 철철흐르는데도 학교에 빠짐없이 출석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한 회사만 35년 이상을 다니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 역시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일을 하셨고, 영어에서 일본어로 전향해 공부하는 와중에 외국어기준이 바뀌어 기준미달로 승진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엔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녔고, 학비로 나가는 돈 때문에 통근거리를 걸어다녀야 했다.
먹을 것도 없었다고 하니 나보다 훨씬 심한 환경에서 노력한 것 같다.
인터넷을 보다가 다큐멘터리 ‘동행’의 지윤이를 알게 되었다.
짧은 영상을 보다가 눈물이 나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들이 고아원에 둔 지윤이를 할아버지가 데려와 아빠가 되어주었다는 내용이다.
화면 속의 지윤이는 해맑고 사랑을 듬뿍 받은 예쁜 아이였다.
지윤이가 아빠로 알고있는 할아버지는 매일 폐지를 모으며 지윤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지윤이가 커가면서 마주할 현실들이 눈 앞에 스쳤다.
나는 어렸을 때 학용품에 대한 갈망이 심해 여전히 학용품을 좋아한다.
돈이 생기면 노트를 사고 펜을 사고 그러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다행히 새것들이 많아 지윤이에게 보내기로 했다.
난 어린시절 일찍 철이 들어 어린시절 주눅들고 우울해했다. 그 아이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것저것 싸면서 기분이 좋다.
지윤이가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예쁜 머리끈으로 머리묶고 다니고 준비물도 잘 챙겨 다녔으면 좋겠다.
아직 여유가 없어 누구에게 돈을 쾌척하거나 직접 봉사를 나가진 못하더라도 내가 가진 것으로 그 아이가 성장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샘솟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던 일을 작게나마 하는 것 같아 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