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경험이 되나요?
18개월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을 했다. 군 복무는 상상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 좋은 쪽은 아닌 방향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강렬한 추억이 생겼다. 장병내일준비적금 혜택으로 돈은 꽤나 모았다. 적금 만기 금액과 추가로 모든 돈을 합치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손에 넣게 되었다. 나이치고 큰돈을 갖게 되었지만 군대에 더 남아볼까라는 마음은 정말 단 1%도 없다.
무더운 여름에 전역하니 9월 복학까지는 여유가 생겼다. 복학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전역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우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지루해질 때까지 게으름뱅이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역 후 일주일은 실컷 늦잠을 자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치킨에 시원한 생맥주를 마셨다. 군대 휴가 때도 나와서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역시나 사회인 신분으로 마시는 맥주가 최고였다.
일주일 동안 뒹굴거렸더니 슬슬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이렇게 굼벵이 같이 살아도 괜찮은 건지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해외여행을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해외여행을 간다면 어느 나라로 가야 할까? 가까운 일본은 너무 무난해 보였고, 동남아 휴양지에 가는 건 지금 방구석에 누워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졌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이렇게 구글 맵으로 세계지도를 열어 하나씩 제거를 해보니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해외여행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험이 되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하는 게 좋을까? 나태해진 정신상태를 확 깨워줄 나라는 없을까? 그렇게 경유를 해서 도착하는 저렴한 왕복 항공권을 결제하고 인도로 떠났다.
인도에 대해 유튜브로 꼼꼼하게 공부를 했다.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다면 수능 대박도 가능했겠다 싶을 정도로 자료 조사를 했다. 인도 뭄바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시내로 가서 안전한 호텔을 찾아보니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 분명 유튜버들이 묵는 현지 느낌의 숙소는 저렴했던 것 같은데 이상했다. 호텔 거리가 애매해서 인도 오토바이 택시인 릭샤를 탔다. 적당히 흥정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멈출 기미가 없다. 급하게 구글맵을 켜보니 이상한 길로 빙 돌아가고 있었다. 휴대폰 지도를 보여주면서 화를 내니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더니 예약한 호텔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호텔 앞에서 릭샤 기사는 시세의 3배 되는 돈을 요구했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호구가 되는 인도 여행의 시작이었다.
인도의 다양한 곳을 여행했다. 수도인 델리에도 들렀고, 인도의 성지라는 바라나시에도 방문했다. 갠지스 강변의 화장터에서는 매일 화장 의식이 진행됐다. 머무는 모든 날에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별의별 사기를 당했고 덤터기는 기본이었다.
사막에서 낙타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라자스탄주의 자이살메르로 향했다. 너무 비싼 가격이 아닌가 싶었지만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돈을 냈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사막의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했지만 안쪽으로 몇 시간을 들어가니 고운 모래가 가득한 사막이 펼쳐졌다. 낙타에 탄 건 처음이라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엉덩이가 너무 쓰려서 도착 후 확인을 해보니 살짝 피가 날 정도로 살이 쓸려있었다. 낙타 사파리 내내 엉덩이는 성할 틈이 없었다.
사막에서의 밤은 황홀했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고, 침낭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감성 그 자체였다. 함께 투어에 참여한 외국인과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외국인 친구보다 낙타 사파리 비용을 2배 이상 비싸게 지불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 온 김에 명상 클래스도 들었고 요가도 배워봤다. 마지막으로는 고민하다 네팔로 넘어갔다. 히말라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꼭 히말라야여야 했다. 트레킹 비용이 비쌌지만 돈은 고려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지에서 본 설산은 웅장했고 나 자신은 굉장히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벌써 여행의 끝이 다가왔다. 비현실적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복학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나는 다시 현생으로 돌아가는 건가? 계좌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여행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복학하고 쓸 돈은 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끝까지 답을 찾지는 못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