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장이 되어 버린 통장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김치찌개를 먹으니 입맛이 돌아왔다. 향신료 가득한 인도의 카레는 한국에서 먹던 카레와는 차원이 달랐다. 인도 음식이 잘 맞는 사람은 살이 쪄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5kg 이상 살이 빠졌다.
여행 경비를 정리하고 통장 계좌를 열어보니 돈이 없다. 분명 군 생활하면서 모은 돈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누군가 내 계좌를 해킹한 게 아닌 이상 분명 내가 다 썼음에 틀림없다. SNS에서 여행 정보를 찾아보면 또래임에도 여유 있게 여행하는 케이스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학 합격 기념으로, 군대 전역 기념으로 부모님이 지원을 해준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부모님이 지원해 주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알고리즘에서는 많아 보였다.
국가장학금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 등록금까지 납부하고 나면 잔액은 더 줄어든다. 한 학기 용돈으로 쓸 돈도 부족한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여유 있는 집 부모님은 자녀가 태어날 때부터 증여를 해준다고 들었다. 증여를 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증여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엄청 큰 금액이 아닌 경우 세금이 크지 않았다.
증여공제는 10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고, 배우자에게는 6억 원, 직계비속인 자녀에게는 5천만 원을 세금 없이 증여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미성년자는 2천만 원). 부자 친척이 있다면 1천만 원을 증여받아도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세금을 내지 않고 최대로 증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태어나자마자 2천만 원 + 10년 후 2천만 원 + 20년 후 5천만 원 + 30년 후 5천만 원 = 총 1억 4천만 원 증여 가능
+ 혼인 시 1억 원까지 혼인출산증여공제 추가 가능
+ 기타친족 10년에 1천만 원 증여공제 가능
친척에게 증여받는 사례는 제외하더하도 태어나서 결혼까지 2억 4천만 원을 세금 없이 증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증여공제를 넘어선 금액을 증여하면 세금은 얼마나 내야 할까? 1억 원 이하에 대해서는 10% 세율을 적용한다. 1억 원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금액 구간별로 누진세를 적용해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태어나서 결혼하는 시점까지 수 억 원의 증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란 걸 안다. 주변에 좀 여유가 있는 친구들을 봐도 부모님이 청약통장에 돈을 대신 넣어주거나 미국 ETF를 어느 정도 증여해 준 정도가 다였다. 그럼에도 이런 증여 절세 방법에 대한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건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다시 한번 은행 앱을 실행해서 계좌 잔액을 보니 우울감이 몰려왔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음에도 지금 이 순간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다.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왜 나는 왜 금수저 아니 하다못해 은수저도 아닌지 회의감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을 갖지 못한 차이, 청소년기에는 최신 아이폰을 갖지 못한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나는 더 발버둥 치지 않으면 계속 뒤로 떠밀려가는 게 아닐까?라는 막막함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