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다 쉽게 하는 결혼, 나만 어렵나요
어릴 적부터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20대와 30대를 거치는 동안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기를 바라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른 살을 넘기면 결혼을 못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부터 부모님은 딸이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게 될까 봐 불안해하셨고,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엄마는 내게 '노처녀'라는 별명이 붙이셨다. 서른 살이 넘는 여자는 노처녀고 남자들은 나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지 노처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결혼 적령기가 지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말씀을 나를 볼 때마다 하셨다.
한 집에 살고 있었기에 엄마와 마주치는 매 시간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학생 때부터 여러 동호회 활동을 했던 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연애를 할 기회가 많았다. 짧은 혹은 긴 만남을 적지 않게 가졌고 주변 친구들은 내가 제일 먼저 결혼을 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하면서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고, 내 통장에서는 축의금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돈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갔다. 집에서는 결혼 압박과 함께 '남자는 같이 살다 보면 다 똑같다. 너무 따지지 말고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세뇌하듯 들려왔다.
어느 순간 나에게 가장 큰 과제는 '결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때면 동시에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나와 성격이 잘 맞고 평생 함께 하고픈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결혼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잘못된 판단의 기준으로 시작한 관계이기에 상대방과 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마음속에서는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하면서 맞춰가면 되지 않을까?
내가 조금 더 양보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에 더 커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애써 마음의 소리를 부정하려 하였다.
그리고 그건 더없이 미련한 생각이었다.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 해도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리 없다.
연애 시절이 수면 위의 빙하라면, 결혼 후는 수면 아래의 빙하일 것이다.
거대한 빙하의 일부분일 뿐인 연애 시절에서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관계라면, 결혼 후에 그 관계가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들은 다 쉽게 하는 결혼, 나에겐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언젠가 다가올,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타협하고 싶지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