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력 Sep 14. 2024

달콤 쌉싸름한 첫 심부름의 추억

5살

내 나이 다섯 살 즈음에 후암동에 살았을 때 일이다. 엄마는 나에게 돈을 쥐여주고는 가게에서 빨랫비누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집에서 구멍가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생애 처음으로 '심부름'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조금 무섭고 걱정됐지만 한번 해보기로 했다.


엄마에게 받아 든 돈을 꼭 쥐고 집을 나섰다. 가게까지는 직진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걸어가다가 동네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내 손에 쥔 돈을 보더니 풀빵을 사 먹자고 한다. '풀빵?' 솔깃한 제안에 나는 생각했다.


'풀빵을 사고 비누를 사 오자.'


마음에 타협을 보고 풀빵을 사 먹기로 했다.  가게 가기 전에 풀빵장사 아저씨가 보였다. 풀빵을 사서 언니도 주고 나도 먹었다. 남은 돈으로 가게에서 비누를 샀다. 내 손에는 거스름돈이 남아야 하는데 없다.


집에 가야 하는데 한참 동안 핑계를 찾느라 늦게 들어갔다. 나는 풀빵을 같이 사 먹자고 한 언니 핑계를 대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비누 사 오고도 남을 시간에 집에 오지 않으니 엄청 걱정했었다.  내 손에 빨랫비누는 있는데 잔돈이 없는 것을 보고 물으셨다. 나는 이웃 언니가 풀빵을 사 먹자고 꼬셔서 그랬다고. 풀빵을 사 먹었더니 돈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면 내 잘못이 좀 없어질 줄 알았다.


엄마한테 된통  혼났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돈을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거구나.'


나는 처음으로 돈을 손에 쥐어보니 돈의 결정권자가 된 것 같아 잠시 착각을 한 것이다.




나는 다섯 살 때 뭔가 반골 기질과 엉뚱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아침 먹고 금방 배가 고파 엄마한테 밥 달라고 떼를 썼다. 방금 밥을 먹었으니 엄마는 점심때가 되어서나 준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후암동 우리 집 앞은 많은 사람이 다니는 대로변 꽤 넓은 골목길이다.


'내가 여기 길가에 누워 있으면 엄마가 창피하겠지. 그러면 밥을 주겠지. '


나는 엄마가 창피한 것보다 내가 밥을 먹는 게 중요했다. 나의 창피함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집 앞 대로변에 우리 집 안방처럼 고이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학교 가는 언니 오빠들이 지나갔다. 나를 쳐다보며 수군댄다.  나는 그래도 아랑곳 않고 누워서 지나가는 발들을 구경했다.


 엄마는 후암동 우리 집 앞에서 손짓을 하며 부르신다.


 '00아 들어와라. 밥 줄게.'  


엄마의 너무나 당황스러워 반 포기한 모습이 느껴진다.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누워 시위한 시간이 얼추 점심때가 되었으니 밥은 먹었지만,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누린 승리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며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자녀들의 고집과 황당한 행동들을 겪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며 엄마도 그런 마음이셨겠지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