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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20. 2024

경찰서 앞에서 길을 잃다

5살

다섯 살 때 우리 집은 후암동이었다. 내 기억으로 남산 아랫동네로 기억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남산에서 아주 많은 계단을 내려가면 우리 동네였다. 우리 집은 단칸방이었고 부엌이 있고 문을 열면 바로 신작로였다. 비 오는 날은 우리 집 대문 처마에서 길 가던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못마땅했다.


나는 '왜 우리 집 앞에 낯선 사람이 뜩 있는 거지?' 생각했다. 입이 댓 발 나와있고 못마땅해하는 나를 보고는 엄마가 말했다.


'사람들이 잠시 비 피하는 거야. 그러면 안 돼.' 그랬다.


엄마 말을 듣고서야 나의 좁은 마음이 보였다.


나는 눈만 뜨면 밖에 나가 놀았다. 새벽 다섯여섯 시쯤 일어나 천척 집(그 당시 먼 친척 집)에 놀러 가서 그 집 남매랑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면 집에 왔다. 그 남매 집에 가려면  엄청 무서운 큰 개를 통과해야만 갈 수 있었는데 개가 잠든 틈을 타 어떡해서든 남매네 집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입성하였다.

  

한 번은 그 집 개가 나를 덮친 적이 있는데 그때 트라우마로 아직도 개를 무서워한다. 그래도 큰 개의 무서움보다 그 집에서 노는 즐거움이 커서 남매를 소리쳐 불러서 개를 잡아달라고 하여 꼭 들어갔다. 매일 아침 점심 그 집에서 해결하니 어느 날은 남매 엄마가 우리 집에 내가 먹은 쌀을 달라고 엄마에게 청구하였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이 가난한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발길을 끊었다.


맨날 놀던 남매네 집에 못 가니 너무너무 심심했다. 어떡해서든 놀 거리를 찾다가,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나보다 한두 살 위의 언니 오빠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별것도 없이 남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몰려다녔다. 어린 꼬맹이인 내가 따라다니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안중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둑어둑해질 무렵, 고개를 들어보니 언니 오빠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남산 윗동네이긴 해도 잘 모르는 동네에 덩그러니 남아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항상 따라다니기만 했었어서 집 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내가 길을 잃었구나'  느꼈다.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니 많고 많은 불 켜진 집에 저 집이 우리 집 같고 또 저 집에 모양이 우리 집 같았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이제 집 가는 길은 더욱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서러움에 '부앙'하고 크게 크게 울었다. 무서운 아빠가 있는 집이지만 영영 이대로 집을 잃고 고아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 뒤에서 어른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와서 왜 울고 있냐고 물어봤다. 알고 보니 공교롭게도 나는 경찰서 문 바로 앞 계단 턱에 앉아 울고 있었던 거다. 경찰서로 들어가 밥도 얹어 먹고, 앉아서 부모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찾으러 올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왔고 내가 먹은 밥값을 경찰분한테 드리고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탔다. 날은 캄캄해서 남산 아랫동네에 불 켜진 집들이 별처럼 반짝반짝했다. 어느 불 켜진 창문으로 보이는 누런 책상 있는 방이 우리 집일까 생각했다.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서도 나는 눈으로 자꾸 남산 밑의 불 켜진 우리 집이 어딜까 찾았다. 그날도 아버지께 혼날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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