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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21. 2024

평택에서

6살

우리 집은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그중에 학교 들어가기 전에 잠시 평택에 산 적이 있다. 평택은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까칠한 도시 여자가 될 뻔(?) 했는데 평택 시골 마을에서 잠시라도 자란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도시의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것과 다르게, 시골은 행동반경이 넓고 자연에서 뛰어놀게 된다.  


  나는 아이를 넷이나 낳을 정도로 건강한 바탕이 어려서 시골에서 놀아서인 거 같다. 엄마 없이 자라서 잘 못 먹은 편인데도 내 나이 또래들보다  힘이 세고 운동도 잘했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시골에서 뛰어놀아서인 것 같다.

 

  평택에서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항상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일찍 남의 집 밭에 일하러 가시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 나는 꼭 엄마를 찾으러 갔다. 주변에  물어봐서 엄마가 어느 밭에서 일하는지 알아내 꼭 찾아가곤 했다. 엄마가 일하는 밭을 아는 동네 아이들을 앞세워 같이 가는 여정은 어린아이가 걸어가기에는 꽤 먼 길이었다.


  나의 목적은 그저 엄마를 한번 보는 것이었다. 동네를 빠져나가 낯선 동네로 접어들기도 하고 숲길을 걷기도 하고 개울을 지나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한 시간 두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저 멀리 어느 밭에 아주 쪼끄맣게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게 보인다. 그 안에 머릿수건을 하고 일하는 엄마가 점점 선명히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밭으로 걸어 들어가니 엄마가 열심히 일하시고 계신다.


  엄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시며 "어떻게 왔어."안아주신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기는 순간 먼 길을 걸어왔던 힘듦이 사라지고 오직 엄마를 만난 기쁨만이 남는다.  


  잠시 후 새참 시간이 되면 정말 맛있는 밥이 나온다. 나는 지금도 시골음식이 최고로 좋다. 각종 나물에 고추장에 비벼 먹는 새참은 정말 맛있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실컷 먹었다. 사람들은 어린애가 엄마를 찾아 멀리 걸어온 것이 기특했는지 넉넉한 인심으로 대했다. 나는 엄마도 좋고 새참도 좋았다.


  이제 엄마도 일해야 하니 집에 가야 한다. 엄마랑 같이 가면 좋은데 어쩔 수 없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아득하지만 가야 한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집으로 걸어갔다.


  똑같은 경로를 되짚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희한하게 엄마를 찾으러 갈 때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 거의 매일을 이 밭 저 밭 엄마를 찾아다니고, 새참을 얻어먹었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어린아이인 내가 엄마를 찾아서 긴 여정을 걸어가는 꿈. 낯선 동네를 헤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숲길을 지나며 엄마를 찾아 헤맨다. 개울도 지나고 밭도 지나지만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엄마를 찾아다니는 꿈을 가끔 꿨었다.

 

  평택에서의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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