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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Aug 02. 2024

아홉 살에 헤어진 엄마를 만나다

엄마의 죽음

아직은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엄마만 생각하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른다. 보고 싶다고 입 밖에 얘기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정작 어렸을 때는 한 번도 엄마 얘기를 안 했다. 차라리 보고 싶다고 실컷 울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고등학생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엄마를 보러 가란다. 엄마를...


나는 엄마랑 아홉 살 때 헤어지고 엄마를 보지 못했다. 5학년 때 큰오빠랑 엄마 찾으러 외갓집에 갔었지만 보지 못했고, 중학교 때 아빠 몰래  엄마를 찾아 외갓집에 갔었지만 보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큰오빠 집에 엄마가 와 있으니 가보라고 한다.


'엄마가 와 있다고?'


엄마랑 아홉 살에 헤어지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십 년은 된 것이다. 영원이 못 볼 줄 알았는데. 엄마랑 헤어진 기간은 체감상 60년은 된 거 같은데 그런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뭐라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번에는 순순히 보내주는 아버지가 이상했지만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큰오빠는 신도림동에 살고 있었고 신혼살림이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신내동 우리 집에서 출발하였다.


미리 들은 정보로는


'엄마가 아프다. 엄마가 이상하다. 엄마가 나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 '였다.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어떤 모습일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나는 터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신도림역에 내렸다. 역에서 오빠집까지 가는 길은 땅을 밟고 걸어가기는 가는데 어찌 딛고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빠르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단숨에 오빠집에 도착했다.


'진짜, 정말 엄마가 있을까.'


오빠 집은 가게 안에 부엌과 방이 딸린 형태의 집이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오빠 집 가게 문을 열었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다.


오빠집 가게방 앞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고, 영원히 못 만날 줄 알았던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맞았다. 어릴 때처럼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었다. 엄마의 시선이 오로지 나만 바라봤다.


나는 어제까지 늘 불렀던 것처럼 "엄마"하고 불렀다. 엄마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엄마는 어릴 때와 달리 많이 성장한 내 모습에 낯설어하셨지만  이내 우리는 예전의 사랑하던 느낌으로 돌아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 엄마도 내 이름을 얼마나 부르고 싶었을까.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을까.


엄마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렸을 때 본 엄마 얼굴이다. 많이 늙으셨다. 세월의 풍파가 느껴졌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날의 분위기와 기억의 편린들이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툭툭 떠오를 뿐이다.


엄마가 유방암에 걸려서 치료 중이라는 것을 들었다. 엄마는 치료 중인 엄마의 가슴을 보여줬다. 왼쪽 가슴이 칼로 파낸 것처럼 도려져서 고름이 나고 거즈 같은 거로 덮어 논 흉측한 모습이었다.


나는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을 도려낸 모습을 처음 봤고, 그게 내 엄마의 모습이라는 게 너무너무 깊게 깊게 슬펐다. 엄마와 큰오빠가 얘기하는 동안 엄마가 보지 못하는 구석에 앉아서 소리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아빠를 피해서 나가서 잘 살길 바랐는데 엄마는 저렇게 아프고 고생만 했구나. 그간의 엄마의 세월도 행복하지 않았구나. 가슴이 미어지고 마음이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에게 매일같이 맞고, 자식도 못 보고 집을 나가서 얼마나 한이 됐으면 암이 걸렸을까 또 한 번 아버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랑 영원히 있고 싶지만 엄마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엄마는 이제 혼자서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아픈 환자가 된 것이다. 


엄마는 충북 음성 꽃동네라는 곳에서 돌봄을 받고 계시다고 했다.  그곳은 엄마처럼 오갈 데 없는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곳이라고 한다.


미리 들은 이야기로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늙고 병들었지만 우리 엄마는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이 만남은 엄마와의 마지막 만남이다. 다시는 그 후에 엄마를 보지 못했다.


모두 찢어지게 가난하니 엄마를 보러 갈 수도, 아는 체를 하면 안 된단다. 음성 꽃동네에서 돌봄을 받으려면 그래야 된단다.

 

나중에 큰오빠가 엄마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엄마가 조금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큰오빠와 올케언니가 잘 못 판단한 거로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대로야. 가슴 아픈 거 빼고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스무 살이 갓 넘어서 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무심한 듯 보통의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한마디 툭 던진다.


"니 엄마 죽었다."


"에...에?"


 "니 엄마 죽었다고."

 

아버지는 말을 못 알아듣는 나에게 설명을 덧붙이신다.


"니 엄마 거기서(꽃동네) 죽었다고."


'엄마가 죽었다고? 엄마가 이제 세상에 없다고?으흐읔..흑..엌..."


나는 살면서 나에게 이런 목소리가 있는 줄 몰랐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 깊은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 아니라, 세상 처음 울어보는 굉장한 울음이었다. 어떠한 슬픔도 이것보다 슬프지 않을 것이다. 전화통을 부여잡고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계속 냈다.


"으허억...억. 엌."


이것은 참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자식도 보지 못하고 가족도 없이 쓸쓸히 죽어 간 엄마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하늘아래 엄마가 없다'


완전히 아예, 그 어디에도 엄마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이렇게 엄마의 죽은 소식을 들어야 하나 원통하고 애달팠다. 어느 하늘아래 살아있기만 바랬던 엄마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전화통으로 아버지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한마디 다.


"너 나 죽어도 그렇게 울 거냐."


기가 막혔다. 엄마가 죽어 슬픈 딸에게 그게 할 소리인가. 나는 아버지가 한 이소리가 대못이 되어 오래도록 아버지가 미웠다.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죽으면 눈물 한방을 흘리지 않을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렇게 영원히 엄마는 세상에 없어진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고 내가 제일 그리워했던 엄마가 이젠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식도 모르게 그렇게 죽어간 것이다.


(나는 세월이 지나 엄마가 거리에서 쓸쓸히 죽지 않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돌아가셨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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