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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ul 23. 2024

태도는 우리의 지각에 색칠을 한다

세계관과 태도는 어떤 관계일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보며, 그 렌즈가 우리의 지각에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정한다. 이 렌즈를 '태도'라고 부르기로 하자. 심리학자 칼융 "태도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 또는 반응하려는 정신의 준비 상태다...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뭔가 확고한 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고한 것에 대한 선험적 지향성과 같은 말이다." -인간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이 문장은 굉장히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다. 새롭게 안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격언들은 무수히 많았던 것 같다.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마음이 없다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못한다."도 같은 맥락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마음이 태도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5가지 감각을 형성한다. 혹자는 6가지 감각이라고 하고, 더 많은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5가지 감각이라고 하자. 이 감각은 우리 몸 외부 상태를 파악해서 뇌에 전달한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정확한 정보가 뇌에 전달되고, 그 뇌에서 외부상황을 3차원 공간으로 지각하는 연습을 하고 그 지각에 따른 대응을 하는 것은 연습하는 시간인 듯도 하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양육 기간이 긴 것은 이런 지각과 대응의 과정에 사고와 사회관습 등의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인 인간의 자아라는 것은 머리의 두개골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 갇혀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세상을 만들어 놓은 의식이라는 말을 책에서 읽었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 의식은 외부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보았다고 하는 사건은 지각을 통해서 뇌의 해석을 통해서 가공된 이야기 형태이거나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위해서 뇌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우리 몸에서 받아들이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뇌는 적게 연산하려고 하고, 그를 위해서 우리는 자동화 또는 유사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방식들을 학습해서 매뉴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매뉴얼적인 행동을 "경로의존성"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하고, 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외부의 환경에 대한 대응매뉴얼에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시각이 포함되어 있고,  그 관점에 따른 행동대응 방침의 대체적인 방향성이 바로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칼 융의 말에서처럼 태도라는 것은 "확고한 것에 대한 선험적 지향성"이라는 말에서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러한 방향성은 긍정적/부정적, 외향적/내향적 등등의 성격적 요소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태도가 지각에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정한다>는 말은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면서도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태도를 가지고 있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태도는 똑같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받아들임에 해석이 들어가고, 지난번의 경험의 영향이 들어가면서 객관적 사실은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정해서 주관적 사실로 변한다. 내가 보는 것이 남이 보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 신선하고 감탄스럽다.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이 이 문장과 만나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인지와 그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나를 명료히 알아야, 타인의 행동과 생각이 더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오해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나의 태도가 고정불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경험과 인식하는 방식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적으로 변한다. 나의 환경이 좋을 때, 내가 배가 부를 때, 기분이 나쁠 때, 해석방법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과 태도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에 대한 오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나를 알고, 타인을 투명하게 보면서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을 때, 편견이 적은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태도는 나의 인식에 색칠을 한다. 나의 태도는 환경에 따라서 항상 동일하지 않다. 타인의 태도는 그들의 인식에 색칠을 한다. 그들의 태도는 또한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항상 동일하지 않다. 나와 타인은 만나서 새로운 환경에서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각자의 태도로 그 상황을 색칠된 인식으로 해석한다.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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