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 이해와 깨달음

들을 때는 이해가 되는 데 실행하면 안되는 것은 왜일까요?

by Mooony

'돈오점수'라는 불교 용어를 처음 듣고 그 뜻에 대해서 많이 공감하면서 학습과 관련한 얘기를 할 때 많이 활용을 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말을 처음 주장한 것은 고려시대 지눌이 주창한 불교의 선 수행법으로 <부처가 되려면 진심을 깨닫고,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깨달음의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순간적으로 알게되는 것을 '돈오'와 꾸준한 수련을 통한 점진적인 나아짐을 나타내는 것이 '점수'라고 배웠습니다. 두가지 깨달음의 방식에 어느 곳에 방점을 둬야하는가 어느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배웠던 학습이론에 따른 학습성장곡선은 S자 커브를 그리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이 학습곡선의 성장하는 부분(steep acceleration)이 돈오에 해당하고 정체하는 부분이 점수에 해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학습이론이 떠오른 것은 어제 탱고의 피구라 연습을 하다가 조금씩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깨달음은 어떻게 오게 되는지를 생각하다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탱고에 대해서 똑같은 동작을 여러번 배우면서도 항상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게 되어서 나하고는 맞지 않는 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는데,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디소시에이션', '피벗'을 이용하는 '히로'라는 동작입니다.


여러번 배웠음에도 이 동작에 대해서 매커니즘과 움직여야하는 방식을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도 실제적으로 하게 되면 어색하고 경직된 움직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다가 디아고날이라는 사선으로 걸어들어가는 피구라를 진행하면서 한번의 '아하 모먼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디아고날 : 로의 입장에서 왼쪽으로 한발짝 => 로만 발바꾸면서 왼발이 라의 오른발 옆으로 이동하고 피벗을 하면서 감아서 서면서 로의 오른쪽 어깨를 세워주면서 정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피구라에서 로가 사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꼼수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를 로의 왼쪽으로 이동시켜서 공간을 만들고 사선으로 파고 드는 방법, 몸은 따라 가지 않고 발만 밀어 넣는 방법, 히로처럼 아뜨라스를 시키듯이 디아고날을 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런 응용가능한 동작들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디아고날이라는 동작에서 알게 된 부분은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사선 걸음에 따른 상체의 비틀림이면 되는 정도였습니다. 그것을 과도하게 디소를 주기 위해서 비틀 필요는 없었고, 상체의 비틀림은 허리를 기준으로 짜여지는 정도의 비틀림이었습니다. 상체의 비틀림을 어깨를 기준으로 한 비틀림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힘의 방향이 과도하게 틀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디아고날에서의 개선 사항은 과도한 어깨를 이용한 상체 비틀림없이 허리를 기준으로 한 골반의 나아가는 방향과 허리위의 가슴이 상대편을 바라보면서 한 발자국을 나아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이후 나아간 왼발의 위에 내 몸이 서면 상체의 꼬임이 풀어지면서 자연스러운 피벗이 일어납니다. 이 '상체의 꼬임이 풀림으로 인한 피벗'이라는 현상이 내 몸에서 만들어지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 메디오 히로 : 이 디아고날의 진행하는 방식을 '메디오 히로'에도 적용을 시켜보려고 시도를 할 때, 많이 받았던 지적사항은 로의 왼발 사이드 => 아뜨라스 리드 => 왼쪽발을 라의 오른쪽발 옆에 붙이고 => 왼쪽의 공간을 열어주고 => 로는 왼쪽 발 위에 체중을 실어주면서 꼬였던 몸이 풀리는 회전이 일어나는 데 그 회전이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몸이 이완되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문제점은 앞으로 걷는 걸음이 아니라 회전을 하기 위한 걸음으로 로의 뒷발에 체중이 실린 상태에서 회전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적절한 시점에 왼쪽의 공간을 열어주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왼쪽으로 회전하고자 하는 힘을 위나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꼬임이후의 근육이완이 부족해서 몸의 힘으로 돌려고 시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양쪽 팔을 이용해서 상대편을 이동시키거나 막는 부분도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두가지 동작을 배우면서 어제 생각하게 된 내용은 '탱고는 걷는 춤이다.'라는 기본으로 되돌아옵니다. 자연스럽게 걸을 때의 몸의 움직임(허리를 기준으로 한 뒤틀림과 풀림)이 상대편에게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자는 명확한 제안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힘이 전달되도록 걷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동작과 연계해서 뒷발의 밀어주는 힘이 약하다는 것과 발목이 굽혀지면서 힘의 전달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받았는데, 이 부분은 걸을 때 뒷발을 밀어서 골반을 앞발의 위에 세워주는 이미지의 걷기를 통해서 발의 안쪽 바닥을 조금 더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탱고를 배우면서 더 빠르게 배우는 사람들에 비하면 떨어지고, 내 몸을 최적화하기 위한 다른 운동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내가 가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해서 재점검해본다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상체를 꼬으라고 하는데, 왜 모든 사람들은 어깨를 돌리거나 팔로 당길까요? 이때의 상체의 정확한 기준점에 대한 상호이해의 부족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몸의 꼬임을 바로 하면 하체가 자연스럽게 피벗한다.' 는 말이 이해가 안되었던 것은 꼬인 상태에서 걷고 난 이후 내 체중이 한 발위에 온전히 서는 걸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걷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조금을 깨닫게 된 것 같아서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다른 탱고를 추는 사람들 중에서 이 글을 보게되는 사람이 있을지, 그 사람은 이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탱고를 추면서 학습곡선에 나타나는 돈오와 점수의 연결도 나타납니다. 기본적으로 탱고는 점수가 중심이고 그런 점수의 축적으로 인해서 어느 순간의 조그마한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몸을 이해하는 과정이 조금씩 중첩되면서 전체적인 움직임이 더 부드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는 생각에 어제는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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