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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Mar 22. 2024

소설 : 인생 -위화-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서 살아가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진 장면의 일부를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영화의 제목은 모르고 스쳐지나갔었다. 아주 부자로 태어났던 어떤 남자가 누군가의 등에 엎혀서 가는 장면이었다. 그 영화의 짧은 장면을 보면서 또 어떤 부유하게 태어났던 사람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가난해지고, 고통받다가 소소한 삶의 기쁨을 알게하는 이야기이겠다는 추측을 하면서 흘려보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영화가 위화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중국 5세대 영화감독인 주우머이의 "인생"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방식이 있구나하는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문체의 아름다움, 어투의 담담함, 그러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스토리의 흐름 등 여러가지 말로 이 소설을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중간쯤부터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눈물로 현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푸구이 라는 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근대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과 그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경험들은 생생하게 바로 옆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의 얘기같은 현실성을 경험하게 해준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었던 것 같다. 나의 잘못으로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 가난으로 딸을 남의 집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상황묘사, 어색한 아들에 대한 미숙한 감정표현과 헤어짐, 그 사실을 아내를 위해서 숨기고 지내는 시간들에 대한 묘사 등이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부분이었다.


내게 이 소설은 시대적 상황을 읽는 창이라기 보다는 운명이라는 것에 의해서 휘둘리는 한 사람의 인생경로에 공감했다. 어리석기 그지 없는 행동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날리고, 그로 인해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전쟁터로 끌려가는 상황 등 푸구이가 경험한 처절하기까지 한 삶에서의 상실과 그 느낌에 대한 묘사는 마치 내가 똑같은 잘못과 상실을 경험하는 듯한 슬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면의 내용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기운이 없을 때마다 뒤적이면서 몇몇 대목을 다시 읽고 싶은 소장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작가 서문 : 내 감사의 마음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처럼 그렇게 언제까지나 변함없을 거라고. (P7)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P13)


얼시, 유청, 자전, 펑샤, 쿠건......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봐 이름을 여러 개 불러서 속이는 거지.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니 밭도 신나게 갈지 않겠소? (P21)


느릅나무 한 그루가 보이더군. 하지만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을 뿐, ~~~ 사실 난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화낼 방법을 찾았던 것뿐이거든. (P43)


푸구이라는 노인 : 그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기 얘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자기 얘기를 있는 대로 털어놓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내가 알고 싶다고만 하면 그는 뭐든지 다 얘기해 주었다. (P62)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P63)


그 지경에 이르면 죽고 사는 문제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네. 죽기 전에 다빙이라도 실컷 먹으면 그걸로 족한 거지. (P101)


먹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듣기는 생전 처음이었지. 돼지 수백 마리가 먹는 소리보다 더 크더군. 게다가 모두 어찌나 빨리 먹던지. (P103)


바람이 지붕 위의 띠를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환한 달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지. 그에 따라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또 따뜻해졌다네. 나는 잠시 자전을 쓰다듬다가, 또 두 아이를 쓰다듬고는 나 자신에게 말했어. "나는 집에 돌아온 거야." (P109)


자전 :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 앞으로 우리가 또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지. ~~~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P111)


그런데 그때 펑샤가 밭둑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옆에 서서 그 애의 손을 잡아끌고 있는 모습도 말일세. 펑샤의 얼굴에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네. (P118)


내가 손을 내밀어 그 애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니까, 그 애도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매만지더군. 그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다시는 그 애를 돌려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P126)


나는 결연하게 말했지.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P127)


생각해보니 그것도 다 운명이더구먼. 다만, 그 쓰디쓴 운명을 쑨 선생이 당한 것뿐이지. (P138)


녀석은 잽싸게 밥 냄새를 두 번 들이마신 다음에야 문 뒤로 갔지. ~~~ " 마침내 당신과 아이들한테 맛있는 밥 한끼를 먹일 수 있게 됐네요." (P178)


시력이 없어 손가락 몇 개를 꼼지락거릴 뿐이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 괴로워서 숨이 탁 막혀버릴 것 같더구먼. 그렇게 몰래 묻어서 자전이 마지막으로 아들 녀석 얼굴 한번 못 보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P198)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흩뿌려놓은 것 같았어. (P199)


사람은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 그는 자기 신세타령을 다른 사람이 관심있게 들어준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나타냈던 것이다. (P200)


사람이란 말일세, 살아 있을 떄 아무리 고생을 많이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찾는 법이라네. (P255)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P256)


자전은 죽기도 잘 죽었다구.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깨끗하게 말이야. 죽은 뒤에 아무런 시비도 남기지 않았지. 죽고 나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여자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 내 맞은편에 앉은 이 노인은 이런 어조로 십여 년 전에 죽은 아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마치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흔들거리듯, 나는 평화로운 마음이 저 멀리서 꿈틀대는 걸 보았다. (P258)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나는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P278)


나는 이제 독 황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광활한 대지가 단단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부름의 자세다. 여인이 자기 아들딸을 부르듯이, 대지가 어두운 밤을 부르듯이.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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