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 라일락 향기를 찾아서-#0. 프롤로그
오늘 오후에도 잠깐-쉿! 아무도 모르게-회사 근처 L 커피숍에 잠시 들러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어요.
짧은 커피 일과를 마치고 회사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다가, 길섶에 자란 솜털이 보송보송한 연보라색 덩굴 라일락*을 보고 한 송이 꺾어서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사무실로,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 앉아서 태연하게 오후 일과를 다시 시작했어요.
아무도 몰랐겠지만, 하늘색 셔츠 주머니에서는 그 덩굴 라일락 향기가 오후 내내 사무실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겠죠?
어쩌면 그날 오후, 어느 한 사람에게만은 그 고운 향기가 내 마음처럼 가 닿기를, 나도 모르게 꿈꾸었는지 몰라요.
뒤늦게 보내는 이 열두 편의 산만하고 서투른 편지 꾸러미는 일 년 전 그 덩굴 라일락이 내게 선물한 향기에 대한 저의 소박한 ‘선물’입니다.
*‘덩굴 라일락’의 본래 이름은 ‘박주가리’예요. 사전을 참고하면 여러해살이 덩굴풀인데, 줄기나 잎을 꺾으면 흰 즙이 나온다고 해요. 잎은 심장 모양이고 7~9월에 라일락 꽃 같은 연보라색 꽃이 피며, 열매는 날렵한 새처럼 타원형이에요.
예전에 청계천에서 산책할 때 가끔씩 눈에 띄어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수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이름이 조금 투박해서, 개인적으로 ‘덩굴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는 해요. 비록 공식적인 명명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숨막힐 듯한 그 짙은 향기 때문에 오히려 본래 이름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