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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실리 가는 길

덩굴 라일락 향기를 찾아서-#1. 무지개를 닮은 슬리퍼

by 시를아는아이

“자신이 몹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하여 그녀의 여러 가지 매력들을 이것저것 다 손으로 꼽아서 열거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냥 송두리째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그녀가 뾰루퉁해질 때면 흔히 짓는 표정이라든가 혹은 고개를 젓는 모습 같은 한두 가지 가슴 뭉클한 면을 지적할 수는 있을 것이다.”_알베르 카뮈/<여름>(‘과거가 없는 도시들을 위한 간단한 안내’ 중에서)


1.

오랜동안, ‘사랑’ 특히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떠올리 때면 이 말을 첫 머리에 떠올리고는 했어요. 그런데 이 에세이는 사실 연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들에 대한 사랑을 담담한 어조로 고백한 글의 일부에요.

특별히 읽을 게 없으면 늘 편한 친구처럼 찾아보는 이 책을 어제 우연히 읽다가 다시 이 아름다운 구절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했어요.

동시에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듯해요. 정확히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듯하네요.

그럼 카뮈는 잠시 돌려보내고 제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2.

먼저 제가 ‘진’의 이름을 알게 된 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물론 주로 식당에서 마주치며 얼굴은 알았고, 우연히 옆자리나 가끔 자리가 없을 때 옆 회의실에서 어색하게 마주앉아 점심을 함께(?) 먹기도 했을 거예요.

그런 걸 ‘마주침’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만남’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현재의 끌림으로 이끈 사물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느낄지 사실 조금 걱정되지만, 제가 처음 어떤 묘한 끌림을 느낀 것은 ‘진’의 슬리퍼였답니다. 편하게 벗어 놓은 여러 슬리퍼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세 가지 푸른색이 무지개처럼 띠를 이룬 그 슬리퍼… .

한동안 저는 그 슬리퍼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했어요. 저런 색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저와 비슷한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듯해요.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물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한 사람의 스타일을 무심하지만 정확하게 보여 줄 수도 있으니까요… .


3.

우연히 ‘슬리퍼의 주인‘을 알게 된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는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주인과 물건이 서로 맞춘 것처럼 꼭 들어맞는 느낌이었죠,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저는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을 상상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진’이라는 지상의 어떤 사람을 해석하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기호 중 하나를 어떤 계시처럼 받는 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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