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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Oct 25. 2016

전화할래?

아니, 하지 말자, 하지 말자



나 오늘 조금 힘들어

사실, 요즘 계속 그랬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편으로는

불확실함을 하나의 기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는 거 같은데

이 시간이 가면 또 갈수록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모르겠어서

그래서 요즘에 계속 마음이 좀 그랬어

산책할래? 라는 말로 대신 전하던

예전에 그 날들처럼


“전화할까?”

“응, 전화하자”


생각해보니까, 그러게

회사에 다니면서도 제일 혼란스러울 때

내 길을 찾을 수 있게 옆에서 응원하겠다던, 또 함께하겠다던

한 걸음도 떼지 못할 거 같을 때 옆에서 같이 걷겠다던

우리가 했던 마지막 약속들을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채


“자고 있었어?”

“아니, 안 자”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그때 네가, 아무런 갈피도 못 잡고 있던 내게

네 인생의 숲은

나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 했었는데

그래서 일이든, 꿈이든, 회사든, 길이든

모두 다 그 숲 안에 들어가는 나무들이라 했었는데


“더 잘래?”

“아니, 너랑 얘기할래”


보통 날과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던 날에도

갑자기 막막해서 숨이 턱 하고 막혀올 때면

네 번호를 누르고 잠시 후 너와 연결이 됐을 때

다시 숨이 쉬어지고는 했는데

한때 제일 먼저 걸고, 제일 우선 걸고, 제일 편하게 걸던 번호가

언제부터 누르기 낯설어진 것인지


“왜 더 안자구”

“목소리 듣고 싶어서”


생각해보니까, 그러게

다행인 거 같기도 해

지금 기억해보려 하니까

네 번호가 더는 떠오르질 않거든


“잠만보인데”

“잠만보지”


나는 끝끝내

한 번도

다시 누르지 않았으니까

너보다 독하게



“힘들었지?”

“아니, 안 힘들었어


있잖아, 나 진짜 길을 잃은 거 같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이렇게 무작정 걸어가도 되는 건지

되게 괜찮은 척하려 하는데

되게 괜찮지 않아

마음이 복잡해, 아니 착잡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하나도, 아무것도 파악이 안 돼


“그럼 보고 싶구나?”

“당근, 보고 싶지”


전에는 네가 옆에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줬는데

따뜻한 그늘이 되어줬는데

가야 할 때를 알려주고, 쉬어야 할 때를 알려주고

웃게 해주고, 응원해주고, 다독여주고, 일으켜주고


“보고 싶어, 많이”

“나도 그런데”


내가 길을 잘 못 찾아서

맨날 가는 데만 가고, 맨날 가는 길로만 가는 거 넌 다 아니까

행여나 길을 잃어 고생할까 봐

항상 데려다주고는 했는데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해”

“무슨, 그런 말 하지 마”


근데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길을 잃은 거 같은데

아예 방향을 모르겠는데

모르겠으면 무작정 걷자는 마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는데


“곧 또 보면 되지”

“그러게, 그러면 되네”


근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거 같은데

나 계속 같은 곳에서 헤매는 거 같은데


“내가 다시 가야겠네”

“그래, 다시 와, 얼른 와”


근데 너는 어디로 간 건지

너의 목적지는

내가 아니라 누가 되어버린 것인지



“전화할래?”


응, 전화하자

그래, 전화하자

나 물어볼 게 많단 말이야, 되게 많아

잘 지냈는지, 날씨는 어떤지

회사는 적응했는지, 사람들은 좋은지

야근도 많이 하는지, 주말에는 그래도 좀 쉬는지

옛 친구들을 만나니 어떤지, 결국에 이사하기로 했는지

아픈 데는 없었는지, 건강히 잘 지냈는지


“전화할까?”


내 생각이 났는지

내 웃음이 떠오르지는 않았는지

내 사진을 꺼내본 적이 있는지

내가 가끔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내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 걱정이 되지는 않았는지

내 얼굴이 그리워지고는 했는지

내 목소리를 잊지는 않았는지


“응, 전화하자”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끝에서

쫑알쫑알 이어지던 내 수다가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바빠도 밥은 챙겨 먹으라고

걱정 섞인 내 잔소리가 허전하지는 않았는지

이어지는 야근에 야근 후 비몽사몽으로 목소리가 다 잠긴 채

눈도 못 뜨면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맴돌지는 않았는지


“더 잘래?”

“아니, 너랑 얘기할래”


나는 이미 진작에

좋은 사람을 만나

다 잊고 잘 지낸다는

말도 안 되는 그 소식을

너는 믿고 있는지


“왜 더 안자구”

“목소리 듣고 싶어서”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나란 사람을 알아가고, 옆에 두었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그 소식을

믿기로 했는지


“보고 싶지?”

“그럼, 보고 싶지”


나를 그렇게도

몰랐는지


나를 그렇게도

모르는지


“전화할래?”


아니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추천 음악. 김동률, 그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S4ctrE4W2a4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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